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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의 一寫一言] 낯섦의 의미

주간평택 2025. 1. 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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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의 햇살이 만드는 역광이 광장의 조형물 위로 비치는 광경은 낯섦을 넘어 기괴함으로 다가왔다. 독일 수도의 한복판,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바로 인근의 광장을 가득 채운 숱한 회색 콘크리트 관棺 모양의 조형물 때문이다. 독일 연방 정부가 2005년에 건립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공식 명칭 "유럽의 살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를 보러 가는 길이었지만 기념비가 이런 모양일 줄은 정말 몰랐다. 나치 정권이 학살한 유대인을 추모하고 그들이 자행한 행위를 잊지 않기 위해 세웠다지만 겉에서 보기에는 마치 늘어놓은 관 모양의 기념비, 그것도 2,711개나 되는 광경은 충격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직사각이자 직육면체인 조형물은 높낮이가 서로 다르다. 배열된 조형물 사이를 통해 서서히 깊어지는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 관은 기둥이 되고 비석이 되며 통로가 된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면 멈춰서서 바라보는 곳마다 다시 파란 하늘의 십자가이다.

 

기념비라고 부르는 이곳에서 더 놀라운 건 2,711개의 의미이다. 숫자에 특정한 상징성을 가지지 않도록, 주어진 공원 면적에 의도한 형태로 세우다 보니 그 숫자가 나왔다는 뿐이다.

전통적인 건축의 규범을 깨고 새로운 형태와 구조를 탐구한다는 해체주의 건축의 선구자로 알려진 미국의 피터 아이젠만. 그에게는 피해자들이 받았을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끌어와 방문자가 적극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게 중요했다. 그게 불규칙한 배치와 높이이며 숫자에 방점과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설계의 진정한 의미이다.

 

도시 소멸 대상에서 벗어나 계속 팽창하는 평택에 이러저러한 건축물과 조형물이 들어설 것이다. 아름다운 것만 예술이 아니듯 반듯한 것만 유의미한 것도 아닐 것 같다. 어떤 시대정신이 필요할지 함께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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