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특별한 공동체 정신을 지켜라
영하 10도의 추위도 막지 못한 율북리 산신제의 의미

2월 7일 밤 9시, 평택시 율북1리 마을회관 앞. 마을 어른들이 모여 트럭에 제사 음식을 실었다. 이 지역의 오랜 전통인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서다. 장소는 마을의 작은 뒷산인 초록산. 여기에 제단이 있는 당산이다. 트럭이 출발하자, 일부는 걸어서 당산으로 올라갔다.
율북리는 옛 율북면의 중심 마을이다. 밤뒤(맹골, 1리), 내촌(안골, 2리), 장계동(3리), 상현(4리), 불정(5리) 등 다섯 개 자연마을로 이뤄졌다. 이 중 산신제는 제를 지내는 뒷산이 있는 율북1, 2리에서만 지낸다. 시기는 정월 대보름 이전이다.
마을 도로에 말이 멈춰 말을 신주로
당산 중턱을 오르면 전면 60cm, 측면 40cm 크기의 콘크리트 한옥 모양의 작은 당집이 보인다. 이 안에 사방 2~3미터 정도의 제단이 있다. 이 당집은 해방 전후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원래는 흙집이었다. 당집 안에는 신주(신령의 혼 혹은 조상의 영혼을 상징)인 말 두 마리가 있었다. 말 위에는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가 타고 있었다.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도 본래 당집처럼 흙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순동으로 만들었는데 전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도둑맞았던 것. 이후 말은 마을회관에 모셔두었다가 산신제 때만 꺼내 놓는다.

말을 신주로 삼는 일은 매우 드물다.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그러면 어떻게 말을 신주로 삼았을까. 이 마을의 특별한 역사와 관련이 깊다. 이곳은 지나는 사람이 많은 도로였다. 이곳을 지나던 말이 멈춰섰고, 사람들은 말이 멈춘 자리에 터를 잡아 마을을 이뤘다. 말을 타는 당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형상이 마을을 상징하는 집 안에 들어있는 것이 원래 신주의 모습이었지만 순동을 탐낸 도둑 때문에 지금은 말 두 마리만 당집에 들어가 신주로 남은 것. 지나가다 마을 사람이 되는 터라 한 개의 ‘성씨’로만 촌락을 꾸렸던 집성촌과 매우 달랐다.
그러다 보니 산신제는 단순한 제사가 아니다. 마을 주민들의 공동체 정신을 보존하는 행위이다. 그 행위가 유교라는 신앙적 전통으로 나타난 것이다. 인근 진위 지역에서도 성황제를 유교식으로 지낸다. 이는 산신제라는 마을 공동체 정신을 위한 행위가 동국대전 등에 기록된 국가적 제례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산신제는 마을의 뿌리이자 정체성
그런 만큼 율북리 산신제는 마을의 역사를 품고, 주민들의 단합과 전통을 이어가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매서운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이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비록 젊은 세대의 참여가 줄고, 전통 재료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이 산신제는 여전히 마을의 뿌리이자 정체성이다. 특히 외국인까지 포용하며 복을 기원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율북리만의 특별한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는 증거다.

5년 전부터 평택문화원이 이 행사를 평택시의 문화자원으로 인식하여 예산을 지원하고 관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을 어르신들의 말에 따르면, 제사에 쓰이는 창호지 구입처조차 찾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전통을 이어 지속적으로 제사를 지낼 젊은이들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날 산신제에도 청년으로 보이는 이들이 없었다.
율북리에는 산신제가 세대를 넘어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 마을 사람들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 준비와 과정 중계
제사는 일주일 전 대동회에서 흠 없는 사람을 제관(제를 주관하는 사람)과 당주(제사 준비와 진행을 돕는 사람) 부부로 선출한다. 이후 제비를 걷어 제사 준비를 한다. 제사 당일이 되면 제당(제사 장소)과 당샘(제단 근처의 샘물)을 청소하고 전기를 가설한다. 제관은 당샘 물을 떠다가 새벽에 집에서 목욕하고 이발하며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다.
제물 준비는 이장이 시장에서 재료를 사다 주면 당주 부부가 맡는다. 옛날에는 황소를 잡아 제물로 썼다. 지금은 시장에서 각 부위를 사서 사용한다. 제물로는 황소 머리, 앞뒤 좌우 의 족, 오장육부 모든 부위, 적 세 쪽, 오색 실과(사과, 배, 곶감, 대추, 밤), 통북어, 쌀로 만든 백설기, 당일 담근 조랏술, 실 등이 준비된다.

해마다 밤 10시에 제사를 지낸다. 하지만 유독히 한파가 몰아친 7일 저녁에는 날씨 때문에 한시간이 당겨진 9시에 진행됐다. 제관과 유사, 제의에 참여할 마을 사람들이 트럭에 제물을 실어 옮긴다. 마을 사람들은 일부는 차를 타고, 일부는 걸어서 당산에 오른다.
제사는 제관이 세 번 절을 하고 헌작(술을 올리는 의식), 독축(신에게 올리는 글을 읽는 의식), 소지를 올리는 순서로 진행된다. 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한지를 태워 공중으로 올리는 소지 올리기는 마을 28개 성씨대로 일일이 한지에 불을 붙여 차례로 하늘에 띄우며 복을 기원한다. 제일 마지막에는 ‘외국인’을 부르고, 복을 빈다.



소지를 올린 뒤 다시 세 번 절을 한다. 그후 넓은 한지에 제물을 조금씩 담아 통북어와 함께 당나무에 실로 묶는다. 마지막으로 제의에 참여한 주민들이 소머리 고기에 음복하며 모든 당제 의식이 끝난다. 다음 날 동이 트기 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제물로 사용한 고기를 나눠준다. 요즘은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나눠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