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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경의 뇌과학연구소] 9장.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주간평택 2025. 2. 2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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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뇌기반상담연구소장 강 민 경

 

현우는 또래보다 체격이 크고 말도 잘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감정 표현이 서툴러 화를 조절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학교에서 문제 행동이 자주 나타났다. 선생님께 혼나고 부모님께까지 연락 가는 일이 반복되면서, 말로 해도 통하지 않게 되자 부모님은 상담을 의뢰하게 되었다.

아이는 겉으로 활발하고 자신감 넘쳐 보였지만, 감정 표현이 서툴러 화를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화를 내는 행동을 후회하면서도 반복하는 모습, 부모님의 꾸지람 속에서 점차 '화'라는 감정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등교 전 엄마와 매일 약속을 한다. ‘오늘은 잘 지내보자’. 학교 수업 시간에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갑작스레 폭발하는 일이 반복된다. 선생님께 혼나고 교실 밖으로 나가 복도에 서있는다.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이다. 집에 가면 부모님의 강한 질책을 받는다. 이런 패턴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럴수록 현우는 화를 내는 자신을 더 자책하며 감정을 더욱 억누르고 있었다. 아무도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현우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단순히 감정 조절만이 아니었다. 에너지 수준이 높은 편이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열정도 많았지만, 그에 비해 수행 능력이 부족했다. 특히, 세밀한 손 조작이 필요한 활동에서 어려움을 보이고 있었다. 가위질하거나 간단한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는 아주 간단한 사건도 눈물을 보이며 극도로 좌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온몸에 힘을 주며 부르르 떨거나, 손에 쥔 도구를 바닥에 내던졌다. 좌절감은 쌓이고, 감정을 다루는 방법이 서툴렀다. 매 순간 올라오는 답답함과 ‘화’의 감정을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도 관찰됐다. 화를 다스릴 줄 모르고, 다양한 감정을 조절할 방법을 알지 못한 채 갑자기 폭발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특히 학교에서만 유독 화를 조절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수행적 어려움과 감정 억제가 맞물리는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뇌기반 미술치료가 적용되었다.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운동 통합을 활성화하여 신체적 조절력을 높이고, 감정 조절과 자기 조절을 돕는 접근이었다. 상담 과정에서 현우는 자신의 감정을 신체적 감각과 연결해 인식하는 훈련부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점토를 사용하는 활동은 힘의 강도를 조절하는 효과가 있다. 활동을 통해 현우는 신체 반응을 조절하는 법을 익혔다. 처음에는 점토를 강하게 쥐고 으스러뜨리는 것으로 감정을 표출했지만, 점차 부드럽게 다루는 방법을 배우며 조절력을 키워갔다.

또한, 감정이 고조될 때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병행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무조건 억누르려 했지만, 이후에는 “지금 화가 나고 있어”라고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렇게 감정과 행동을 연결 짓는 훈련을 반복하면서, 그는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을 포착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초기에는 실수도 많았고, 생각만큼 되지 않아 몸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이 나타났지만, 점차 감정과 행동을 인식하며 적절한 표현 방식을 찾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우는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짜증을 내거나 화를 참다가 폭발했지만, 이제는 “이 정도면 괜찮아”, “충분히 잘했어”라는 말을 스스로 하며 자신을 다독였다.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감정의 흐름도 보다 유연해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경험을 통해,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절하는 법을 익혔다.

그 결과, 문제 행동으로 학교에서 오던 연락이 줄었고, 안정적으로 생활한다는 피드백이 많아졌다. 가정생활에서도 부모님이 아이의 변화를 체감했고,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르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길러갔다.

현우의 변화는 단순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던 아이에서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해 갔다. 현우는 이제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말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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