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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숙의 끄적끄적] 열심히 살면 안 되는 거였다.

주간평택 2025. 4. 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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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숙 에바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맑은창 님 생일 축하해요. 일산에서 코골이 올림.’

궁서체 리본을 단 소담스러운 꽃바구니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배송원이 다녀가셨던가 보다. 빨간 장미가 턱 고이고 앉아 말똥말똥한 어린아이 눈망울로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웃 꼬맹이가 안아달라 무작정 팔 뻗치는 듯도 보였다. 꽃물이 뚝뚝 떨어져 손바닥이 온통 빨갛게 물들 것만 같았다. 탐스럽기가 홍옥이었다. 얼추 세어도 족히 30송이 넘는 장미가 나의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렸다. 그를 떠올리는 것도, 그를 떠올리며 내 감정에 미소 짓는 것도 못내 낯설고 어색하다. 숨죽인 죄책감이 수년째다.

“안녕하세요, 맑은창 님!”

전동휠체어가 내 앞에서 멈추는데 그 사뿐함이 고양이 같다. 풍채와 영 매칭이 안 되는 미소년 표정은 6월 플라타너스 이파리를 닮아 파릇하다. 이름 대신 잊지 않고 닉네임을 불러주는 세심함이 아침이슬만큼이나 싱그럽다.

“네, 안녕하세요. 최문하 님도 잘 지내셨어요?”

“덕분에요. 과제 때문에 진땀은 뺐지만요.”

“최문하 님이 진땀 빼셨으면 다른 분들은 땀으로 목욕했겠네요. 하하핫.”

“농담 아니에요. 수십 번을 읽으면 뭐해요, 돌아서면 새까맣게 까먹는데. 허구한 날 까마귀 고기를 먹어도 이보단 낫겠어요. 하하하.”

말씀과 달리 콧노래가 나올 것 같은 모습은 코 벌렁거리며 억지로 웃음 참는 짓궂은 중2 사춘기 남학생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엊저녁까지도 식사 시간 말고는 매일 밤낮으로 이것만 붙들고 있으세요. 좀 보세요.”

활동지원사님이 휠체어 테이블 위에 놓인 검은색 클리어 파일을 펼쳐 보이셨다. 거기엔 지난 8회기 동료상담 최고과정에서 나눠드린 자료집이 낱장으로 분리되어 한 장씩 끼워져 있었다. 보기에 그보다 더 얌전하고 정성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삼사십 장이나 되는 자료를 굳이 번거롭게 손수 작업하는 이유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깔끔한데요? 근데 이렇게 만드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 이렇게 하니까 책장이 맘대로 안 넘어가서 혼자 보기 편하더라구요. 모서리가 낡지도 않구요. 전에는 활동지원사님이 주구장창 책장을 붙잡고 계셨거든요. 머릿속으로 안 들어와서 언제 넘길지 모르는데 말예요. 하핫.”

“아이고, 진즉 알았으면 한 부는 제본 안 뜨고 그냥 가져올 걸.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어요.”

“아니에요. 이래저래 불편해서 어쩌다 찾은 방법이에요. 하나도 신경 쓸 것 없어요.”

매일 장애인들과 생활하고 사업 참여자로 직접 대면하면서도 이런 섬세한 부분을 뜻하지 않게 놓칠 때가 있다. 이때의 정신 아득함이란, 깜박하고 챙기지 못한 현수막을 현장에 도착해서야 아차 하는 아찔함과 비등하다.

“여기서 2박 3일 끝나고 가잖아요? 저 진짜 책 뜯기 바빠요. 어찌나 애지중지하시는지 저도 모르게 구겨질세라 찢길세라 동동거린다니까요. 안 그래요? 하하하!”

활동지원사님 말씀이 쑥스러우셨는지 최문하 님 얼굴이 낮술 한 것처럼 발그스름했다.

“숙제 때문에 며칠 전엔 밤까지 새셨잖아요. 근데 피곤하지도 않은지 다음날 보면 아주 쌩쌩하시더라구요.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뒤늦게 공부에 푹 빠졌어요, 빠졌어. 하하하!”

소수 멤버로 구성된 장애인 동료상담 최고과정이 3년 과정으로 진행되다 보니 활동지원사님들과의 친분은 현장의 톡톡한 감초였다.

귀까지 빨개진 최문하 님이 곁눈질로 은근슬쩍 활동지원사님을 말리시는데 꼭 조선시대 갓 시집온 부끄럼 많은 새색시 같았다. 뭣 때문이었는지 그러고도 우리는 한참 수다스러웠다.

“장애인이 된 후로 꿈 없이 살았어요. 사지마비라 팔다리가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는데 꿈이 다 뭐예요. 허기라도 못 느끼면 좋겠는데 매끼 배는 고프지, 먹고 싸면 누가 치울 때까지 구린내 맡으며 멀뚱멀뚱 기다려야지, 그러다 설사라도 지릴라치면…. 휴우. 내가 그냥 개돼지고 기생충이더라구요. 정말 죽지 못해 살았네요.”

온탕에서 풍월 읊던 여유작작한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음 냉탕으로 내몰린 것처럼 심장이 다 오그라들었다. 입 꾹 다물고 안경 너머 그의 눈동자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머릿속은 조금 전 상황을 검열하느라 혼란스러웠다.

그는 의외로 심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놀란 나를 진정시키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아니, 아니에요. 지금 너무 행복해서 한 말이에요. 나한테도 남아있는 게 있더라구요. 눈, 코, 입, 귀, 머리요. 전부 살아있는 거예요. 최고과정에 참여하면서 깨달았어요. 그래서 나도 동료상담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내가 나한테 처음 준 믿음이에요. 30년 만에 꿈이 생긴 거죠. 후훗.”

입가에 번진 파스텔톤 미소가 그가 말한 믿음을 재강조하고 있었다.

“숙소 좀 옮겨 주면 안 돼요?”

아침 일찍 참여자가 스텝을 찾을 땐 새벽녘에 걸려오는 전화만큼이나 불길하다. 얼굴까지 푸석해 보이는 게 뭔가 심상찮다는 걸 직감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최문하 님 땜에 밤새 한숨도 못 잤어요. 코 골아봤자 이틀밖에 안 되니까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어요. 아니 근데 무슨 코를 1분도 안 쉬고 계속 고냐구요. 고막 터지는 줄 알았잖아요.”

“최문하 님이 코를 골아요?”

“말도 마요. 침대가 들썩거릴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니에요?”

입에 거품을 무시는 통에 더 여쭙다간 감정만 상할 것 같았다. 일단 알겠다고 진정시켰다. 그러나 룸메이트가 갑자기 방을 옮긴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난감했다.

알고 나타난 것처럼 코골이 당사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야말로 해맑게 웃으며 다가오시는데 내가 괜한 고민을 했구나 싶었다.

“하하하! 그래서 어제 코 골아도 괜찮냐고 여쭸구만. 하하하. 맑은창 님, 코골이라고 소문 좀 내주세요. 아직 소문이 덜 나서 저와 주무시는 걸 겁내지들 않는 것 같아요. 하하하.”

난색이던 분까지 어이없는 상황에 덩달아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싱거운 해프닝이었다. 그날 밤 독방 쓰시며 의기양양 원 없이 코 골며 주무셨다 했다.

이듬해 12월, 마지막 12회기까지 3년 과정을 너끈히 수료하셨다.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자꾸 채근만 해서 많이 힘드셨을 텐데….”

“맑은창 님이 안 그랬으면 포기하고 말았을 거예요.”

“그만큼 열심히 노력하셨잖아요. 앞으론 활발히 활동하시는 거죠?”

“그럼요. 꿈만 같아요. 이제부턴 제대로 살아 볼 겁니다.”

1년이 지나도록 다른 수료자들 틈에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집채만 한 구름이 한눈판 사이 온데간데없듯 그도 사라졌다.

“최문하 님! 왜 이렇게 안 보이세요?”

얼마 만의 통화인지 모르겠다.

“저어….”

“왜요? 무슨….”

불길한 예감은 무섭게 맞아떨어진다.

“저어, 욕창이 좀….”

최고과정 수료증 받은 다음 날이었단다. 보기에 멀쩡했던 꼬리뼈 주변이 고름으로 꽉 찼더란다. 푹 꺼져버리더란다. 아이 주먹만 한 싱크홀이 생기더란다. 새빨간 거짓말 같더란다. 1년 내내 병원만 전전했더란다. 휠체어엔 한시도 앉아 있을 수가 없단다. 24시간 침대에 엎어져만 지낸단다. 회복은 불가능하단다.

그리고 울린 “카톡!”. 시뻘겋다 못해 검붉은 구멍이 거기 있었다. 벽을 보고 활처럼 누운 그의 엉덩이엔 아이 주먹만 한 싱크홀이 정말 거기 있었다. 새빨간 거짓말 같은 욕창이 실제 거기 있었다. 충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본능이었을까. 구역질과 눈물이 연신 올라왔다.

전신마비 장애인이 12시간 남짓 휠체어에서 버틴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혹사인지 모른 척해버렸다. 고통스러워했지만 열심히 하는 그를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부지런히 합리화했다. 중도 포기할까 봐 임의대로 나의 목표 안에 그를 밀어 넣었다는 양심선언을 차마 하지 못했다. 내가 가해자였단 사실 또한 실토하지 못했다. 일말의 반성이 어쭙잖다.

전화할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그를 싱크홀에 가뒀다는 죄책감은 날마다 정점이었고 가중치였다. 피하고 숨는 게 다반사였고 일상이었다. 그런 나를 찾아내 그가 꽃바구니를 보내왔다.

용기 내서 폰을 꺼낼 거다. 열심히 살아 달라 부탁해서 죄송하다 말할 거다. 열심히 살지 말아 달라 당부할 거다.

전신마비 장애인은 열심히 살면 안 되는 거였다.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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