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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원의 詩로 세상 엿보기] 봄밤

주간평택 2025. 4. 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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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박제천

오늘 밤엔 달도 만월이다 내 얼굴도 만월이다
나를 보는 얼굴들도 만월이다
내게 오는 바람도 만월이고, 그걸 보는 꽃들도 만월이다
저 만월의 나무 속 아이들이 발길질 하는 소리,
봄밤에는 모두 만삭이어서
불콰한 얼굴, 불콰한 가슴을 술로 씻어낸다
이런 밤엔 술병 속 술을 다 비워도
술병은 여전히 만삭의 배를 끌어안는다
그 안에 내가 들어 있어.
 

봄이 되면 모든 것이 가득합니다.

가을의 가득은 잘 보이지만

봄의 가득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겨울 동안 성장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체온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키웁니다.

그러다 봄이 되면 드디어 만삭을 이뤄

꽃 피듯 만개합니다.

그래서 봄이면 달도, 바람도, 꽃도

심지어 내 얼굴도, 술병도 만월입니다.

만월은 둥글고 환합니다. 그리고 적당히 붉습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 밤이면 술을 마십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아무리 술을 쏟아내도, 그리하여 술병을 비워도

술병이 여전히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만월인 내가 술병 안에 있었던 것이지요.

내 가득함이 다른 사람의 만월을 키우는

기쁨의 재료가 되었던 것입니다.

봄은 스스로 돌아오는 오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흘러 저절로 오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기쁜 희생 덕분입니다.

겨우내 남몰래 쌓았던 당신의 가득함은

이번 봄, 과연 누구를 채워주는

기쁜 희생의 도구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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