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협의법’ 무시한 평택시… 잘려나간 건 나무만이 아니었다
20년 시민 세금으로 가꾼 도시숲, 부서 불통과 절차 위반으로 무력화
평택시가 20여 년간 시민 예산으로 가꿔온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행정기관 간의 협의 부재와 절차 위반으로 인해 다수 훼손된 사실이 드러났다. 현행법에 따라 보호받아야 할 도시숲 자산이 명확한 협의 없이 제거된 이번 사안은 단순한 행정 착오로 보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노출시켰다는 평가다.

문제의 장소는 팽성읍 신궁리 국도 38호선 일원. 평택시가 2003년부터 직접 예산을 들여 조성하고 관리해온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1,060그루가 도열해 있던 곳이다. 도로 하루 통행량은 5만여 대에 이르는 간선도로이며, 시의 주요 경관 축 중 하나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이 구간에 민간사업자가 버섯재배사 진출입로 개설을 위해 수원국토관리사무소로부터 도로점용 허가를 받으면서 가로수가 다수 훼손됐다. 이식도 보존도 없이, 절단만 이뤄졌다.
문제는 이 허가 과정에서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규정된 사전 협의 절차가 누락됐다는 데 있다.
해당 법 제14조는 “가로수를 이설·제거할 경우 해당 시장·군수·구청장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제15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 가로수를 훼손하거나 제거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원국토관리사무소는 “허가 조건에 가로수 이설이 포함돼 있었으므로 별도 협의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작 가로수를 20년 넘게 관리해온 평택시 산림녹지과와는 단 한 차례의 협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행정 내부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평택시 건축허가과는 지난해 1월, 해당 구간 인근 3필지에 건축 허가를 내주며 가로수 관련 협의를 생략했다.
같은 건에서 농지 전용과 하천 관련 사항은 각각 한국농어촌공사와 생태하천과와 문제없이 협의한 점과 비교하면, 수목 관리 부서만 배제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행정 누락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산림녹지과는 “시 소유 수목 처리 협의가 먼저 이뤄졌어야 한다”며 내부 공문을 통해 항의했지만, 이후에도 책임 소재는 불분명한 채 시간만 흘렀다.

이번 사안은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상 시의 자산 보호 측면에서도 위반 소지가 있다. 해당 법 제7조는 “지자체 공유재산은 타인이 무단 사용하거나 훼손할 수 없으며, 사전에 관할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시 예산으로 조성한 가로수가 별도 동의 없이 훼손됐다면, 이는 시유재산 보호 의무를 위반한 행정 사례로 판단될 수 있다.
건축허가과는 “이미 도로점용 허가가 난 상황에서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절차 위반을 기정사실화한 해명일 뿐, 사전 협의 의무를 무시한 책임을 덮을 수는 없다.
시민사회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벌목이나 행정 착오가 아닌, 시정 전반의 부실한 법 집행과 공공자산 보호 의식의 결여로 보고 있다.
한 시민은 “수십억 원을 들여 도시숲을 만든다 해도 나무를 자르는데 협의 하나 없이 가능하다면, 푸른도시란 말이 무슨 의미냐”고 비판했다.
지역 정치권에서도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시의원은 “이곳은 차량이 속도를 높이는 곡선 구간이고, 가로수는 시가 수십 년간 관리해온 공공자산”이라며 “이런 곳에 진출입로를 허가했다는 것은 행정의 책임 방기”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의원은 “명백한 법 조항이 있음에도 협의가 누락된 것은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 문제”라며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히고, 인허가 절차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시는 관련 사안 재발 방지를 위한 협의체 구성과 매뉴얼 보완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사후 수습이 아닌, 책임 있는 원인 규명과 제도적 정비다.
강주형 기자 iou868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