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규 칼럼] 일본을 걷다
- 입력 2024.01.03 22:15

눈의 고장 나가노현은 다케다 신겐의 힘의 원천이다.
다케다 신겐을 표현하는 단어는 풍림화산(風林火山).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움직일 때는 질풍처럼 날쌔게,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적을 치고 빼앗을 때는 불이 번지듯이 맹렬하게,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킬 때는 산처럼 묵직하게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에도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 조차도 그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다. 죽음을 벗어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겁먹은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평생 곁에 두고 어려울 때마다 바라보았다.
나가노현은 말 키우기가 적합했다. 해서 일찍이 한반도로부터 말을 도입해 대대적으로 키웠다. 다케다 신겐은 말의 가치를 알았다. 그는 일본 최고의 기마군단을 꾸린 자다. 그러나 그의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는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연합군에 참패한다. 기마군단의 힘을 너무 과신했던 게 원인이었다.
다케다 신겐의 조상은 미나모토, 즉 겐(源)씨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미나모토 가는 미나모토 요시미츠(1045~1127)로부터 번성한다. 663년 백제부흥운동이 실패로 끝난 뒤 나카노오에 황자는 오쓰 지역으로 왕궁을 옮기고 천지천황이 되지만, 아들과 동생의 권력다툼에 신라계의 지원을 받은 동생이 천지천황의 아들을 죽이고 천무천황으로 등극한다. 한반도를 통일한 신라의 후손들이 일본열도의 실세로 올라선 것이다.

800년대, 해상왕 장보고는 동북아의 바다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를 기리는 비석이 일본 3대 사찰 중 하나인 엔라쿠지에 조성되어 있을 정도로 그는 일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신라 출신의 장보고 영향을 받는 일본의 귀족층은 백제의 흔적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미나모토 가를 일으킨 요시미츠는 성인식을 오쓰 시의 신라성신당에서 거행한다. 신라성신당은 신라명신(新羅明神/국보)이라는 신을 모시는 사당인데 신라명신은 장보고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성인식 당시 요시미츠는 이름을 신라사부로(新羅三郞)로 이름을 바꾸는바, 이 역시 신라계 화랑의 후손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1192년, 요시미츠의 후손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가마쿠라 막부를 세운다. 이때부터 막부의 쇼군은 신라계의 미나모토 가문에서만 나와야 했다. 무로마치 막부의 아시카가 다카우지 역시 미나모토 가였고 에도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족보를 고쳐 미나모토 가의 후손이라고 정통성을 주장했다. 이런 이유로 빈농 출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쇼군이 될 수 없었고 천황제의 최고 직급인 태정대신에 올랐던 것이다.

필자에게는 구로사와 아키라감독의 ‘카게무샤(影武者)’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온다. 다케다 신겐 사후 군대를 이끌고 출진한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다케다 가문은 시조 신라사부로 이래 전투를 피한 적이 없었다.’ 일본이 한반도의 유적임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가노현에는 관광자원이 꽤 많다. 나가노의 중심 마쓰모토시에는 일본의 3대 미성 중 하나인 마쓰모토 성이 자리하고 있다. 전국시대 축성한 천마루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성은 12개, 그중 국보로 지정된 5개의 성 중 하나가 마쓰모토 성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북알프스의 설경은 그림이다. 특히 산속의 료칸 스카이랜드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쓰모토시의 야경과 북알프스의 설경은 황홀함, 그 자체이다.

참고로 일본의 3대 명성(名城)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성인 오사카 성, 오다 노부나가가 태어나고 가토 기요마사가 축성한 나고야 성, 또한 가토 기요마사가 역시 축성한 구마모토 성을 말하며 3대 미성은 007영화에 나온 효고현의 히메지 성, 역시 폐허의 모습이 아름다운 효고현의 다케다 성, 그리고 마쓰모토 성을 칭한다.
마쓰모토시에서 동북쪽으로 20여 분을 가면 세계 최대의 와사비 농장이 자리한다. 그 규모가 꽤 크다. 북알프스의 눈 녹은 차가운 용출수가 건강하고 맛있는 와사비를 만들고 있지만 생각보다 많이 비쌌다.

와사비 농장 부근에는 호타카 신사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 3위의 높이를 자랑하는 북알프스의 호타카다케(3,190m)를 모시는 신사로 일본 알프스의 총진수로 불리며 역사가 있는 꽤 오래된 신사다. 이곳에는 참배를 꼭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