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마가타현의 바닷가에 자리한 쓰루오카는 과거 쇼나이 번의 중심 도시였다.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의 주요 배경이 된 이곳은 성리학을 일찍이 받아들였으며, 현재도 공자를 모시고 있는 치도관이 자리한 독특하고 조용한 매력을 가진 도시다.
피의 시대를 종식하고자 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간양록의 저자인 강항의 사상을 받아들여, 도쿄대학의 전신을 설립한 하야시 라잔에게 성리학을 융성시키도록 명령했다. 일본 열도에 충(忠)과 효(孝)의 사상을 심으려 한 것이다. 하야시 라잔은 천황가를 위한 공가제법도, 사무라이를 위한 무가제법도, 그리고 승려들을 규제하기 위한 승가제법도 등 다양한 제도를 제정했다. 또한 그는 일본 3대 경승지로 알려진 일본 3경을 처음으로 거론한 인물이다.
1583년 교토에서 태어난 하야시 라잔은 어린 시절 불교를 배웠으나 승려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주자학에 심취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승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라잔을 추천했으며, 그 스승은 강항에게서 충과 효를 숭상하는 성리학을 전수받은 인물이었다. 라잔을 처음 만난 이에야스는 그를 도쿠가와 가문의 학문적 기반을 닦는 중요한 인물로 삼았다.
쇼나이 번과 성리학의 흔적
야마가타현에 자리한 쇼나이 번은 성리학을 숭상했던 지역으로, 충과 효를 중시한 사상적 토대 덕분에 메이지 신정부와의 갈등이 깊었다. 특히 메이지 신정부와 대립하던 아이즈 번(현 후쿠시마)은 정부군과의 격렬한 전투로 인해 수천 명의 희생자를 냈으며, 거리에는 시신이 방치될 정도로 참혹한 상황이 벌어졌다.

메이지 정부군인 죠슈 번(현 야마구치)의 병사들은 과거 조정의 적으로 낙인찍힌 금문의 변의 치욕을 갚고자 아이즈군을 철저히 응징했다. 그들은 아이즈군의 시신마저 수습하지 못하게 막으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당시 죠슈 번 사무라이들은 신발 바닥에 “살적 회간(薩賊會奸)”이라는 글귀를 새겼다. 이는 “사쓰마는 도적이고, 아이즈는 간신이다”라는 뜻으로, 이들의 깊은 원한을 상징했다.
메이지 신정부군의 핵심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협력했던 죠슈(야마구치)와 사쓰마(가고시마)였다. 역사적으로 이들이 전면에 나설 때마다 한반도는 시련을 겪었다. 임진왜란과 이후의 강점기가 그러했다. 이토 히로부미와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죠슈 출신이었으며, 정한론을 주장했던 사이고 다카모리는 사쓰마 출신이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들이 백제의 후손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는 사이고 다카모리의 고향에 고려교 등 한반도와 연관된 지명이 많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조카이산과 마쓰오 바쇼의 흔적

쓰루오카에서 남쪽으로 동해를 따라 내려가면, 동북지방에서 두 번째로 높은 조카이산(2,236m)이 장엄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주간평택 독자들은 조카이산의 전망대인 호코다테까지 걸으며, 잠시 구름이 걷힐 때 보이는 웅장한 계곡과 동해바다의 풍경을 감상한 적이 있을 것이다. 7월 말에도 산기슭에는 눈이 남아 있었으며, 이곳은 동북지방의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명소다.

조카이산 근처에는 일본의 하이쿠 명인 마쓰오 바쇼(1644~1694)가 감탄했던 구십구도(九十九島)가 있다. 마쓰오 바쇼는 에도 전반기의 시인으로, 일본 전역을 여행하며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 장소를 하이쿠에 담았다. 그는 1689년 여름, 구십구도를 방문해 다음과 같은 하이쿠를 남겼다.
구십구도는
비에 젖은 니시시(서시)
황금꽃이련가
니시시는 중국 4대 미인 중 한 명인 서시를 뜻한다. 서시는 눈을 찡그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모습이 오히려 그녀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했다고 한다. 구십구도의 섬에서 외로운 아름다움을 느낀 바쇼는 서시를 하이쿠에 담아 그녀의 고독을 표현했다.


1804년 이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구십구도의 지형은 2미터 가까이 융기해 섬들이 육지로 변했다.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논과 밭 사이로 솟은 봉우리들만이 당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모내기철에 논에 물을 가둬야만 바쇼가 본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 볼 수 있다고 한다.
죠슈 번과 사쓰마 번, 그리고 아이즈 번의 깊은 갈등은 일본 근대사의 한 축을 이루는 흥미로운 역사다. 쓰루오카와 조카이산, 그리고 구십구도의 풍경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도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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