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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기고

[강민경의 뇌과학연구소] 8장. 숫자로 가득한 세상에서 한 걸음 내딛다

by 주간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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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뇌기반상담연구소장 강 민 경

 

준혁이를 처음 만난 건 7살이 되던 2월이었다. 그는 규칙을 어기고,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떼를 쓰거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을 보였다. 유치원에서도 통제가 어려웠고, 잦은 상담 요청이 이어졌다. 부모님은 ADHD를 의심하며 상담실을 찾았다.

아빠는 무서웠고, 엄마는 최선을 다했지만 양육의 어려움으로 감정적으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불안한 상태였다. 준혁이는 숫자와 네모, 계산을 유독 좋아했지만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법을 몰랐다.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는 방식이 서툴렀고, 자신 있는 것에만 집중하며 새로운 시도를 꺼려했다. 숫자와 암기에는 강했지만, 간단한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도 어려워했다.

준혁이를 위한 뇌기반 미술치료는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신경발달적 요소를 고려한 접근이다. 미술작업을 통해 감각-운동 통합을 촉진하고, 전두엽을 포함한 뇌의 자기조절 능력 향상을 위한 과정이었다. 특히나 네모 형태를 좋아하는 준혁이의 특성을 반영하여 점진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탐색하도록 유도하였다. 이는 고착된 사고 패턴을 유연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촉각을 활용한 점토 작업과 패턴 그리기를 통해 주의 집중력과 실행 기능을 강화시켰다. 이는 뇌의 시각-운동 통합을 돕고 자기조절력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치료와 함께 부모 교육도 병행되었다. 부모는 갑작스럽게 반복되는 아이의 고집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방법, 감정적으로 지칠 때 대처하는 법 등을 상담하면서 가정 내 환경도 점차 변화해갔다. 엄마는 점점 불안에서 벗어나자 감정적인 대처를 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아이의 반응도 달라졌다.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아빠는 무섭기보다는 다정한 방식으로 준혁이를 대했다. 부모의 반응 변화는 준혁이의 정서적 안정과 자기조절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초등학교에 입학 후, 준혁이는 초반에 비교적 잘 적응하는 듯했다. 그러나 수업 중 책상 위로 올라가거나 돌아다니는 등 돌발행동이 나타났다. 다시 부모님의 걱정이 커졌다. 그러나 부모님과 상담을 지속하며, 뇌기반 미술치료를 통해 준혁이가 새로운 구조적인 환경에서도 규칙을 배우고 잘 적응해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시각적 패턴과 촉각적 경험을 활용해 감각 처리 능력을 향상시키고, 충동성을 억제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감각을 조절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높이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준혁이는 점차 공동 생활에서의 규칙을 인식하고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1학년 후반이 되자 준혁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집 근처 공부방에 걸어갔고, 규칙을 지키려는 시도가 자연스러워졌다. 이전에는 작은 일에도 쉽게 징징대거나 무조건 고집을 피우는 행동을 보였다면, 이제는 독립적으로 수행하려는 모습이 점점 많아졌다. 부모님의 걱정을 불러일으켰던 돌발행동들은 점차 소거되었고,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가정에서도 이전보다 안정적인 모습으로 자리잡으며, 결국 상담을 종결하였다.

준혁이는 여전히 숫자를 좋아하고, 자신이 잘하는 것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조금씩 키워가고 있다. 뇌기반 미술치료를 통해 감각과 사고의 균형을 맞추고 관계를 배우며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길러가는 과정. 그 변화의 시간들은 준혁이에게 세상을 좀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상담 과정에서 경험한 작은 도전들이 앞으로 준혁이의 성장에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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