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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기고

[서창숙의 끄적끄적] 온전히 산다는 것

by 주간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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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숙 에바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사무실 출입문을 등지고 멈춰 서 있는 모습이 낯설다. 매일 만나는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권리중심 일자리’) 노동자이거나 프로그램 참여 장애인이시라면 멀리서 옷태만 봐도 단박에 알아차렸을 테지만 영 감이 오지 않았다. 이럴 땐 일단 달려가 호칭 생략하고 인사부터 하고 볼 일이다.

“안녕하세요?”

반죽 좋게도 내게서 하이톤 어조와 어금니까지 드러난 웃음이 장전된 총알처럼 나왔다. 그런데 반응을 기대한 전동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뒤통수만 주춤주춤 꿈틀거릴 뿐, 바로 옆 활동지원사님이 라인 밖으로 아웃될 뻔한 공을 라켓으로 낚아채 올리듯 얼른 내 인사를 받으셨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이분이 제가 활동지원하는 허찬호 님이세요.”

“네? 정말요?”

깜짝 놀라 그 앞으로 미끄러지듯 얼굴을 쑥 내밀었다. 마치 고개 샐룩거리며 얼굴 마주 보는 꼭두각시 춤사위 같았다.

“안녕하세요? 정말 허찬호 님이세요? 진짜 맞으세요?”

“후후, 네. 아마도요.”

멋쩍은 듯 싱거운 대답이 새삼 여유롭고 싱그러웠다. 머리칼이 이마 전체를 덮고 마스크에 가려 까만 눈만 겨우 드러났지만 가느스름한 눈매와 눈가 근육의 움직임만으로 그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초면에 놀란 듯 반가워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쑥스러운 듯 웃고 계셨다. 전기 나간 줄 모르고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는데 어느 순간 덜컥 방 안 가득 불빛이 들어찬 기분, 박하사탕을 아작 깨물어 입안이 화한 느낌, 딱 그거였다. 일련의 과정에선 그에게 기대할 무엇도 없었기 때문에 그의 출현이 그저 놀라웠다.

통화버튼을 눌러 한 번에 통화한 적이 있었나 싶다. 기억을 짜깁기하고 쌍끌이해도 많아야 한두 번. 급하게 문자나 SNS를 보내도 사나흘 묵히거나 아예 확인조차 하시지 않을 때가 부지기수였다. 소위 ‘읽씹’이 반복되는 통에 어떨 땐 기간이 임박한 문자를 보내놓고 나조차 까맣게 잊기 일쑤였다. 궁여지책으로, ‘허찬호 님 재통화’ 메모 포스트잇을 모니터 귀퉁이에 붙여놓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대문짝만한 포스트잇을 그분 이마에 떡하니 붙이는, 소심하지만 속 시원한 상상 행동으로 혼자 낄낄거리며 푸념을 삭히기도 했다. 그렇게 6개월 남짓, 허찬호 님과 소통하고자 애쓰던 나의 인내력 밑천이 서서히 바닥나고 있던 참이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상담실이라는 공간 무게감이었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액체같이 유했던 분위기가 질문 하나에 금세 딱딱한 고체처럼 굳었다. 전신마비 장애인에게 어떻게 지내시냐는 질문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주고받는 의례적인 안부 수준일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상시 생존 위협에 노출되는 독거 전신마비 장애인과 대면할 때는 안색은 물론 표정, 말하는 톤, 심지어 타고 있는 휠체어 상태까지 샅샅이 살피는 눈썰미가 무의식중에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옷깃 스치듯 짧은 농은 단 몇 분에 그쳤고, 허찬호 님 주변으로 무겁게 퍼진 그림자 따라 나의 모든 신경도 거기에 머물렀다.

“국장님, 저 죽을 것 같아요.”

한숨이 돌처럼 뭉쳐져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하게 SOS 치는 소리로 들렸다. 무심코 깜박거리던 내 눈에 느닷없이 힘이 들어가고 숨이 턱 막혔다. 들킬세라 날숨으로 몰아쉬었다.

“너무 힘드시죠?”

대답 대신 기력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위로의 말이 극한의 전신마비 장애인에게 처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천 번이라도 각오하지 못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설픈 말들이 오히려 신기루 허상만 가져다준다는 것을 이미 체득한 바였다.

“9년 전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고 터무니없는 활동지원 시간 때문에 행정심판까지 했어요. 당시 아무런 정보가 없었으니 그게 제겐 최선이었죠. 그래서 얻어낸 시간이 하루 12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더라고요. 남은 12시간을 혼자 버텨야 한다는 건데, 단 1센티도 움직일 수 없고 체온 조절도 안 되는 저 같은 전신마비에게 그건 죽으란 말이거든요. 그러다가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하루 19시간까지 활동지원을 받게 됐어요. 처음엔 뭣도 모르고 이젠 살았다 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고요. 12시간이나 19시간이나 하루 24시간 중에 남는 시간 혼자 견뎌야 하는 건 매일반이었어요. 어제도 죽었다 살아난 게, 활동지원사님이 퇴근한 후에 강직이 와 버린 거예요. 하필 소변줄이 등에 눌리는 바람에 혈압이 정신없이 올라갔어요. 퇴근한 활동지원사님 부랴부랴 불러 가까스로 위기는 모면했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전 오늘 여기에 없었을 거예요. 휴우….”

“휴우….”

땅 꺼지는 안도의 한숨을 복창하듯 함께 내뱉었다.

“천만다행이에요. 큰일 날 뻔하셨어요. 그래서 작년부터 계속 시에 활동지원 24시간 요구는 하고 있는데 여전히 검토 중이라고만 하네요. 최선을 다한다고는 하는데 참…. 죄송해요.”

“국장님이 왜 죄송해요. 하지만 정말 힘이 드네요. 어제 그렇게 죽었다 살아나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두려워지고,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한심스럽기만 하고….”

“전화라도 자주 주시지. 안 그래도 여러 차례 전화하고 문자도 보냈는데 소통이 너무 안 돼요. 저도 속상하단 말이에요.”

심통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나도 애썼다는 생색이 묻어나는 퉁퉁거림이었다.

“후훗. 이젠 제가 죄송할 차롄가요? 근데 전화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허를 찔렀다. 활동지원 24시간 요구안을 내고 면담 자리를 가져도 돌아오는 답은 지독히도 한결같았다. 예산 없다, 검토하겠다…. 그 회신만 수년째 거듭됐고, 허찬호 님 말씀대로 달라진 건 없었다.

“그리고 전신마비로 살면서 거의 모든 게 제한적이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대부분 흘려보내게 돼요. 활동지원사님이 계시는 시간이면 모를까. 근데 활동지원사님이 계셔도 신변 처리하고 어쩌다 보면 놓쳐요. 중증장애인들 시간과 비장애인들 시간이 같진 않잖아요. 국장님도 모르시지는 않을 텐데….”

흐려지는 말끝에 두 번째 허를 찔리고 말았다. 중증장애인 시간과 비장애인 시간은 엄연히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국장인 내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허찬호 님이 활동지원 없는 생지옥의 시간을 현재형으로 견디고 있고, 그날들이 닳고 닳아 철심이 튀어나온 타이어같이 척박하다는 것을 유리알 보듯 알고 있다. 그 속사정을 알면서도 나는 어느새 비장애인 중심, 관리자 중심의 안일함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모니터 띄워 데이터 입력에만 열중하는 동안 촛불 심지가 다 타들고 꺼져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제가 꼭 가시넝쿨 옆에 놓인 팽팽한 풍선 같아요. 그렇게 매일 노심초사하는 내가 너무나 비참하고. 온전한 하루를 살고 싶어요. 단 하루를 살아도 온전한 나로 그렇게 살고 싶어요.”

독백하듯 창밖을 바라보며 말씀하시는 옆모습이 외딴섬처럼 외로워 보였다.

“허찬호 님! 온전히 산다는 게 무슨 뜻인지 여쭤봐도 돼요?”

잔잔한 호수에 물수제비 뜨듯 넌지시 여쭸다. 미동 없이 풀죽은 답만이 허공을 쓸쓸히 채웠다.

“죽음 공포 없이 그냥 맘 편한 하루요.”

사족 같은 대꾸가 더는 필요치 않았다. 쥐고 있던 볼펜이 테이블 위에 놓이고 나도 똑같이 창밖만 바라봤다. 상담실에 멍한 침묵이 흘렀다.

언제 또 올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진동처럼 남기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버팀목 없이 홀로 생사의 기로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하는 중증장애인 저들이 서럽다. 오로지 살아내기 위한 사투가 일상이 되어버린 저들에게 활동지원 시간을 쪼개고 쪼개 분쇄해서 적선하듯 지원하는 이 시대 벽이 너무 높다. 너무 단단하다. 그 앞에서 부디 포기하지 않기만을 당부드린다.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래벌판 모래알 같은 잔소리다.

두 계절을 보내고 나서야 시로부터 허찬호님의 활동지원 24시간 승인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허찬호 님으로부터 장문의 감사 메시지가 왔다. 병아리 혓바닥만 한 새순 같은 복지가 허찬호 님과 같은 중증장애인에겐 삶의 동아줄이라는 것에 다시금 밑줄을 긋는다.

오늘도 마음이 향하는 방향으로 무작정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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