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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정치

“시각장애인을 위한 조례라면서… 정작 시각장애인을 위한 준비 없었다”

by 주간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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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해설 지원 조례’ 간담회, 기본도 없는 준비… 공감·이해·책임 실종

지난 21일 평택시 장애인회관에서 열린 ‘평택시 시각장애인을 위한 현장 해설 지원조례(가칭)’ 간담회는, 제도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시의회와 시 집행부의 무관심과 무책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최선자 시의원이 주관한 간담회는 (사)경기도시각장애인연합회 평택시지회 박기원 지회장, 시각장애인 활동가 7명, 양순자 평택시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장을 포함함 9명의 시각장애인 등 15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그러나 현장엔 점자 자료도, 음성 안내도, 해설 전문가도 없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간담회에 정작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

조례의 핵심 내용인 ‘현장 해설’에 대한 설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담당 공무원들은 해당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문화재 해설사와 연계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간담회에 나온 공무원들은 이 조례가 “자신들 부서 소관이 아니다”라는 발언까지 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심지어 ‘현장 해설’이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인지를 설명할 전문가도 없었다.

이은숙 시각장애인 활동가는 “문화해설사와 현장 해설사는 개념이 다르다”라며 “문화해설은 말 그대로 역사 설명에 가깝고, 현장 해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손끝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이런 것을 모르는 사람이 조례를 만든다면 그것은 껍데기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간담회는 결국 ‘현장 해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만 반복되다 끝났다. 예산 규모, 실행 방식, 교육 시스템에 대한 논의는 시작도 되지 않았다. 비장애인을 위한 ‘문화해설’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현장 해설’의 차이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집행부는 간담회 자리에 ‘참석’만 했을 뿐,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박기원 지회장은 “수화 통역은 청각장애인 단 한 명만 참석해도 의무적으로 제공되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해설은 왜 아무것도 없느냐”라고 지적했다. 이는 장애 유형 간 차별의 문제이며, 제도적 기반 없이 운영되는 형식적인 조례가 실제 권리 보장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박 지회장은 조례 전문 낭독을 요청했고, 최선자 시의원이 이를 실행했다. 이후 박 지회장은 조문을 하나하나 다시 읽고 토론하자고 제안했지만,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은 인쇄된 글을 읽을 수 없기에, 한 번 들은 내용을 머릿속에서 구성하며 이해해야 한다. 반면 비장애인은 언제든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며 확인할 수 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준비 부족은 당사자의 참여 자체를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날 자리는, 조례 제정을 위한 첫걸음이 아니라, 평택시가 시각장애인의 문화권에 대해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남게 됐다.

시각장애인의 문화권은 시혜가 아닌 권리다. 한 참석자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만큼 느끼고 상상하는 감각은 더 예민하다. 제도는 그 감각을 믿고 존중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택시 시각장애인을 위한 현장 해설 지원조례(가칭)’는 단순한 조항 몇 줄이 아니라, ‘보이지 않아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위한 첫 번째 문장이 돼야 한다. 시는 이제 묻고 대답할 차례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조례, 과연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인가.

 권현미 기자 brice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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