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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식

[법복을 벗으며] “별인 줄 알았던 나, 이제는 작은 불빛으로”

by 주간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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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지방법원 고상교 부장판사 퇴임식

지난 21일 평택지방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고상교 부장판사가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법원을 떠났다. 그는 서울대 철학(경영학 복수전공)과를 졸업한 뒤 최연소 학번으로 합격, 특전사 법무관을 거쳐 판사가 된 그는 18년간 법복을 입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그는 겸허한 마음으로 퇴임을 맞이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나는 반딧불> 

 
 

퇴임식에서 그가 낭독한 퇴임사는 한 편의 고백이자 성찰이었다. 젊은 시절 자신을 ‘빛나는 별’이라 여겼지만, 결국 인생을 돌아본 끝에 자신이 ‘벌레’였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고 판사. 그러나 그는 덧붙였다.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자신이 남긴 작은 흔적들을 되새기며, 이제는 법복을 내려놓고 개똥밭에서 반딧불이처럼 작은 불빛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었다.

고 판사는 재직 기간 동안 한 번도 판결문을 완성하지 못해 선고를 연기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 판사의 역할이지만, 그 무게를 홀로 감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건 하나하나에 고민을 거듭하며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었고, 수면제를 찾는 날도 많아졌다. 그는 판결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걸어왔다.

그러나 법복의 무게는 판결문뿐만 아니라, 삶의 균형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거의 10년 동안 주말부부로 지내며 가족과의 거리감이 커졌고,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 반려견이 자신을 더 반기는 현실을 마주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했던 만큼, 이제는 그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싶습니다. 법복을 내려놓고,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퇴임식에는 그의 가족을 비롯해 법원 선후배와 지인 등 50여 명이 참석해 새로운 도전과 출발을 축하했다. 고상교 부장판사는 이제 판사로서의 역할을 내려놓지만, 여전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며 “이제 아주 미세하게나마 개똥밭에서 작은 불빛이 될 수 있는 반딧불이가 되어보겠습니다.”고 각오를 다졌다.

퇴임식에 참여한 지인 A씨는 “누구보다 민원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하신 분으로 기억한다. 앞으로 더 멋진 소식을 듣게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며 퇴임 후 그의 앞날을 축복했다.

 

권현미 기자 brice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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