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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기고

[강민경의 뇌과학연구소]12장. 처음 꺼내본, 마음 한 조각

by 주간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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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교육학 박사그린뇌기반상담연구소장 강 민 경

 

“공부는 재미없어요. 학교는 그냥 싫어요.”

초등학교 1학년인 소희는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담실을 찾아왔습니다. 학교에서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갈등이 잦았으며, 때로는 규칙을 따르지 않거나 입을 꾹 다문 채 감정을 닫아버리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부모는 소희가 자주 혼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자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오해를 사는 것이 걱정된다며 상담을 의뢰했습니다.

소희는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땐 밝고 신나게 말했지만, 기분이 조금만 상하면 금세 삐지거나 째려보는 식으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지는”, “짜증나”, “어이없어” 같은 표현을 무심코 내뱉다가 혼나는 일이 많았고, 부모 앞에서는 속상함을 직접 표현하기보다 표정을 바꾸거나 감정을 툭 던지듯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고자 노력했지만, 정서적인 대화나 감정을 함께 조율하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소희는 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거나 주목받지 못할 때, 혹은 친구들과 더 놀고 싶지만 학원에 가야 할 때, 규칙을 어겨서 혼났을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삐진 듯한 말투와 행동으로 반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인식하거나 설명하는 능력은 충분히 자라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상담 초기, 소희는 슬라임처럼 즉각적인 자극을 주는 활동을 선호했고, 연필을 들고 무언가를 표현해야 하는 활동은 꺼려하거나 곧잘 포기했습니다. 반복적이거나 세심한 표현이 필요한 활동에는 쉽게 좌절했고, 익숙한 것만 반복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어느 날,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리겠다며 의욕을 보였지만, 마음처럼 그려지지 않자 짜증 섞인 말과 함께 연필을 탁 놓아버렸습니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실수나 실패를 받아들이는 힘은 아직 약했던 것입니다.

뇌는 불편한 경험을 피하려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쉽습니다. 뇌기반 미술치료는 감각과 움직임을 활용한 활동을 통해 뇌가 안전하고 익숙한 상태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회로를 다시 만들어가도록 돕습니다. 특히 시각, 촉각, 신체 감각이 통합적으로 자극되는 구조는 두려움보다 표현의 즐거움을 강화시키고, 반복된 시도를 견디는 힘을 키워줍니다. 소희의 치료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며, 실수해도 괜찮은 분위기 속에서 시도하는 자체를 격려했습니다. 치료자가 함께 움직이고 표현하며 모델링을 제공했고, 점차 아이의 반응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안 돼도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처음으로 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단순한 위로나 흉내가 아니라, 감정을 조절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신호였습니다. 감정을 다루는 뇌의 회로가 유연하게 작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소희는 그림 속 등장인물에 감정을 연결하며 표현하기 시작했고, “이건 화났을 때예요”, “이건 내가 좋아하는 거예요”라고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한글 쓰기를 주저하던 모습도 점차 변해, 짧은 단어를 직접 쓰거나 등장인물의 말풍선을 채우는 활동까지 이어집니다. 소희는 ‘잘하려는 아이’에서 ‘해보려는 아이’로 변해갔습니다.

반복적인 미술 표현을 통해 감정에 머물고, 그것을 시도해보는 경험을 거듭한 결과, 감정을 다루는 뇌의 구조는 차츰 유연함을 회복해갔습니다.

자극적인 화면이 빠르게 바뀌는 세상 속에서, 소희는 천천히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그 시작은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라는 말에서 비롯되었고, 그 말은 곧 아이 마음이 자라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뇌기반 미술치료는 소희가 그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실수해도 괜찮은 마음의 공간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희는 비로소 자신과 감정을 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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