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굴곡진 언덕에서 만난 ‘무소의 뿔’

유홍준은 그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노년이 가까워진 인생들은 티베트나 차마고도처럼 인간이 문명과 덜 부닥치며 살아가는 곳, 인간의 간섭을 적게 받아 자연의 원단이 살아 있는 곳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지지만, 몸이 받쳐주지 못해서 그냥 로망에 머물고 말기 일쑤’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년 세대가 로망으로 꿈꾸는 곳 중 하나로 사막여행을 꼽았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게 사막여행이다.
2008년 이집트 사하라의 백 사막과 흑 사막 하룻밤 야영은 특별했다. 그저 낡은 텐트와 침낭 그리고 밤새 타닥거리며 타오르던 모닥불이 다였는데도. 누구는 사막의 여우를 보았다 하고 누구는 밤하늘 초승달과 밝은 별을 이야기했다. 그런 황홀함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어 떠난 모로코 사하라 촬영 길이다.
해가 뜨려면 아직 한참을 더 있어야 할 시각에 호텔을 나섰다. 이제 막 우기가 끝나며 겨울로 접어드는 사막의 새벽은 짙은 구름이 잔뜩이다. 길 없는 길, 가파른 경사와 움푹 팬 모래 구덩이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가며 차가 얼마나 달렸을까. 먼동이 틀 무렵이 되어서야 운전기사는 거대한 모래 언덕 아래에 나를 내려 준다.
조금은 별난 사진을 찍으려고 사막 초입의 어느 가게에서 산 3킬로짜리 돌덩어리 암모나이트 화석을 메고 올랐다. 수억 년 전에 바다였다는 사하라의 붉은 모래 언덕과 화석의 부조화 사진 말이다. 전날 비가 흩뿌린 덕에 모래 먼지는 날리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간의 강행군으로 완전 방전에 가까운 체력은 기울기가 45도는 족히 넘을 사구沙丘에서 한 발 떼고 두 발 미끄러지기 일쑤. 8부 능선쯤에서 억지로 화면을 설정하고 화석을 배치한 후에 셔터 몇 번 누르지도 못하고 탈진해서 주저앉았다. 그래도 그 능선 너머로 보일지 모르는 풍경을 찾아 일어서야 했다. 그 순간 저 멀리 네 마리 낙타를 끌고 가는 사람이 눈에 들었다. 찌릿한 전율과 함께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내 잠재의식 속에 똬리 틀고 있던, 혼자서 가는 ‘무소의 뿔’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여행객을 싣고 온 차들만 드문드문 보일 뿐인 모래벌판의 네 마리 빈 낙타는 어느새 저만큼 멀어져갔다. 다음 촬영도 잊은 채 넋 놓고 바라보다 낙타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직전에 깜짝 놀라 겨우 셔터를 몇 번 눌렀다.
출발을 독촉하는 신호가 언덕 아래에서 연신 울린다. 언덕 너머의 또 다른 풍경은 포기한 채 미끄러지면서 내려왔다.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탓일까. 가방에 매단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듣던 울림 좋은 성악가의 노래와 함께 사하라 그 굴곡진 언덕을 묵묵히 발 옮겨 걷던 새벽 빈 낙타가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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