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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기고

[서창숙의 끄적끄적] 1981년 5월

by 주간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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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숙 에바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정사각형 모양의 나무 상자는 모서리마다 패고 칠까지 벗겨졌다. 헝겊을 서너 번은 덧대고 기운 해진 양말 같았다. 말이 좋아 반짇고리지, 거저 주고도 욕먹을 허접한 바구니였다. 실타래엔 꼭 한두 개의 큰 바늘이 꽂혀 있었는데 늘 실이 꿰어 치렁치렁했다. 바닥엔 크고 작은 각양각색의 단추가 너저분한 실밥과 엉켜 먼지처럼 뒹굴었다. 알록달록 각각의 헝겊 쪼가리 뭉치가 까만 고무줄에 묶였다, 언제고 옷이며 양말 기울 때 쓰려고 모아놓으셨던 게 빤하다. 궁색의 극치였다.

너무 크고 뻑뻑해서 양손으로 벌려야만 사용할 수 있었던 가위는 손잡이가 거무튀튀한 헝겊으로 돌돌 말렸다. 멀쩡한 손잡이에 헝겊은 왜 말아놨는지, 헝겊이 원래 그런 색깔이었었는지 여쭌 적은 없다. 나이 어린 내게 우리 집 가위는 원래 그런 거였다.

반짇고리에 담긴 들쭉날쭉한 물건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금색 안경집이었다. 약간 찌그러지긴 했어도 칙칙한 물건 일색이었던 집구석에서 반딧불이처럼 빛이 났고, 그래서 가장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래봤자 다리 하나가 덜렁거리는 돋보기였지만 당시 나는 금장 정도로 인식했다. 야릇하게도 어른들만의 영역을 거기서 느꼈다. 한 번쯤은 호기심에 끌려 안경집을 열고 돋보기를 써봤을 법도 한데 장난으로라도 만지작거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 콧잔등에 느슨하게 걸쳐진 모습만 종종 바라봤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유가 단지 그것뿐이었을까….

“또오!”

“어? 으응, 그래. 크흠!”

축 처진 10월 벼 이삭이 바람결에 비틀거리듯 바느질하던 엄마의 고개가 아까부터 이리 꾸벅 저리 꾸벅였다. 그때마다 나는 숙제하다 말고 깨웠고, 엄만 잠결에 움찔 깼다가 헛기침하며 다시 바느질하기를 반복했다. 짧을 땐 10분도 안 돼 똑같이 조셨고 나는 똑같이 깨웠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잠든 날엔 고개 숙인 동상처럼 앉은 채 선잠이 드실 때도 있었다. 고꾸라진 인형처럼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주무시기도 했다. 뒤척이다 어느 결에 눈 떠보면 시간이 멈춘 듯, 엄마의 모든 동작이 멈춰 있었다. 오른손엔 무명실을 꿴 바늘이, 왼손엔 구멍 난 양말과 덧댄 천 조각이 함께 들렸다. 콧등에 가까스로 삐딱하게 걸쳐있는 돋보기는 벼랑 끝에서 아등바등하는 것 같았다. 어깨만 살짝 건드려도 도미노 넘어가듯 바늘이든, 천이든, 양말이든, 돋보기든 엄마 무릎 위로 우수수 다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오른손 집게손가락 끝엔 상처에 밴드 붙인 듯 검은색 골무가 끼워져 있었다. 야무져 보이는 가죽 골무는 손가락에서 일부러 빼지 않으면 빠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이 역시 이미 생명 다한 쓰레기에 불과했다. 박음질한 구멍이 뜯어지고, 심지어 바느질을 얼마나 하고 바늘귀에 얼마나 찔렸는지 골무 중심부가 허옇게 파여 너덜너덜했다.

늦은 밤 잠자리까지 쫓아다니는 지독한 가난이 엄마 몸에 덕지덕지 주렁주렁 매달렸다. 밑도 끝도 없이 괜한 심통이 났다. 그 심통이 가난에 매여 사는 엄마 때문이었는지, 내가 느끼는 가난의 상징물들이 싫었던 때문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먹잇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기어 다가갔다. 모조리 다 떨굴 심산이었다. 그때,

“엇, 왜?”

주무시는 줄 알았던 엄마가 눈을 번쩍 뜨며 소스라치게 놀라셨다.

“그냥 쫌 자라고. 나 이딴 양말 안 신는댔잖아!”

“그럼 빵구 난 양말 신고 다닐래? 군말 말고 어여 잠이나 자, 낼 일찍 가야 된다며?”

“싫어. 엄마나 신어. 차라리 맨발로 갈래. 창피해 죽겠단 말야.”

“아니 얘가 안 하던 투정을 다하고 이래? 빨리 안 자?”

“우씨! 맨날 언니 오빠가 쓰다 남은 것만 주고. 왜 나만 낡아빠진 거 주냐구! 내가 그지야?”

“뭔 소리하는 거야, 지금? 시답잖은 소리 그만하고 자.”

“나 수학여행 안 가. 애들이랑 한방에서 자는데 이 양말 신고 어떻게 가. 아악!”

시쳇말로 막내의 설움이라 치자. 급기야 폭발하고 말았다. 숨소리도 들릴만한 자정이었지만 낮같이 울어댔다. 놀라서 건너온 아버지의 휘둥그레진 눈을 보고 더 서럽게 울었다.

“무슨 일이야? 밤늦게 왜 애를 울리고 그래?”

“이 양말이 창피해서 수학여행 안 간다고 저러잖아요. 에혀.”

엄마가 실매듭을 이로 끊으며 기운 양말을 아버지 앞에 놓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셨다.

“그러게 미리 한 켤레 사다 놓지, 좀. 그래도 처음 가는 수학여행인데.”

“나도 그러고 싶죠.”

혼잣말 같은 말씀에 조금 전 내쉬었던 한숨이 깊게 묻어났다. 더 이상 아버지도 거들지 못했다.

“막내야. 이번엔 그냥 가자. 갔다 오면 아버지가 장날 가서 이쁜 걸로 사오께. 응?”

달래듯 말씀하시며 기운 양말을 손에 쥐여주셨다. 나의 눈물이 그만, 흙물이 들고 쩍쩍 갈라진 아버지의 엄지손톱 위로 뚝 떨어졌다. 어린 눈동자는 자연스레 울퉁불퉁하고 그을린 아버지 손등으로 옮겨졌다. 울음 끝이 저절로 잦아들었다.

가난 소굴에서는 눈치껏 알아서 철들 수밖에 없는 거였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반짇고리 앞에 쌓인 여러 켤레의 낡은 양말과 옷가지들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 잘 넣어 가. 몇 푼도 안 되는데 쓸데없는 선물 사 올 생각 말고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사 먹어. 알았어?”

아버지가 꼬깃꼬깃 접힌 천 원짜리 지폐 여덟 장을 주셨다.

“헤헤, 알았어. 잘 쓸게. 근데 엄마는?”

“글쎄, 금방 온다고 했는데….”

“어디 갔어?”

“응, 급하게 읍내 다녀올 일이 있다고 했거든.”

‘무슨 일이 그렇게 급하다고 수학여행 가는 날 하필….’

괜스레 엄마가 서운했다. 매일 일 나가는 엄마셨기 때문에 얼굴 보는 건 아침 일이십 분이 고작이었다. 양말을 신는데 안으로 뭉친 헝겊이 영 불편했다. 아니, 불편하게 느껴졌고 불편을 가장해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신경질이 나고 자꾸만 울컥거렸다.

여행 가방 앞에는 김밥 도시락 두 개와 삶은 달걀, 킨 사이다와 내가 좋아하는 수노아 껌이 나란히 놓였다. 굳이 뭔지 물을 필요가 없었다. 주섬주섬 가방에 챙겨 넣으면서 선생님께 드릴 도시락은 꺼내기 쉽게 가방 맨 윗자리에 올려놨다.

“나 갈래.”

“엄마 안 보고 가?”

“아침 8시까지 모이라고 했어. 대절한 관광버스라 늦으면 안 된댔어.”

“그래. 재밌게 놀고 구경도 잘하고 와.”

“몰라.”

결국 아버지한테 쏴 붙고는 등을 휙 돌려 나왔다.

신작로 바닥을 긁듯 발끝으로 치며 걸었다. 흙먼지가 날리든, 운동화가 닳든 찢기든 상관없었다. 두툼하게 들어찬 양말이 더없이 갑갑하고 짜증만 가중됐다. 어제까지만도 부풀었던 수학여행 설렘이 물거품처럼 꺼져버렸다. 슬금슬금 올라오는 아침 해도 거슬렸다. 5월 아침이 7월 무더위 속이었다.

“창숙아? 창숙아?”

‘?’

“창숙아?”

‘엄마?’

엄마였다. 걷다 뛰다, 그러다 다시 걷다 뛰다 하셨다. 어젯밤에 폭발했던 서러움이 다시 소나기처럼 몰렸다.

“허억헉, 휴후우! 길 헛갈릴까 봐, 아이고, 헉헉.”

“읍내 갔대며?”

“응응, 잠깐만.”

엄마가 손 빠르게 검은 봉지를 펼쳤다. 양말이었다. 발바닥은 핑크색, 발목엔 딸기 모양의 빨간 방울이 달린 양말이 두 켤레나 되었다. 눈이 부셨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여행 가는데 왜 울어. 어여 신발 벗어 봐. 여여, 여에 발 올리고. 어서.”

앉으시더니 무릎을 손으로 탁탁 치며 내미셨다. 거기에 발을 올리란다. 시키는 대로 했다. 운동화를 벗고 양말은 신은 채 발을 올렸다.

“넘어질라, 엄마 어깨 잡어.”

시키는 대로 오른손으로 엄마 어깨를 잡았다. 벗긴 양말을 공 모양으로 만들어 봉지에 넣으셨다. 곧바로 새 옷 냄새 나는, 뽀얀 달걀 같은 양말이 나왔다.

“미안허다. 싸구려 양말 한 짝 제때 못 사주고.”

엄마 손이 분주하고 세심했다. 뒤꿈치가 똑떨어지도록 신겼다. 눈 감고도 엄마 손길이었다.

“이쁘네, 이뻐. 빨리 운동화 신자. 늦을라.”

엄마가 여행 가방을 대신 들고 뛰었다. 가을 운동회 때도 몰랐던 엄마 달리기가 나보다 빠르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그렇지, 엄만 내겐 뭐든 선수였지.

엄마의 유품 중 나의 유일한 선택은 골무였다. 가장 긴 시간, 가장 가까이에서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었던 건 당신이 밤늦게까지 졸며 바느질할 때였다. 내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엄마가 몹시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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