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의 길, 가나자와에서 묻다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커우공원(뤼순공원).
조선의 청년 윤봉길 의사는 일본 천황의 생일인 ‘천장절’을 맞아 개최된 일본군의 전승기념식장에 도시락과 수통 모양의 폭탄을 들고 나타났다. 일본군 1만 명과 상해에 거주하는 일본인 1만여 명이 운집한 행사장. 오전 11시 50분,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울리고 묵념이 시작되던 순간, 윤 의사는 수통 폭탄의 기폭장치를 작동시켜 단상으로 던졌다. 목표는 명중했고, 그는 도시락 폭탄까지 작동시키려 했으나 불발되며 일본 헌병에 체포됐다.
이 의거로 중국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주중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는 한쪽 다리를 잃었다. 훗날 그는 일본의 항복 문서 조인식에 의족을 하고 참석하게 된다.
중화민국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윤 의사의 용기에 경의를 표했고, 이를 계기로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을 전폭적으로 확대했다. 순원(쑨원)과 함께 그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는다.
윤봉길 의사는 같은 해 5월 25일 사형선고를 받은 후, 11월 18일 오사카 인근 위수형무소로 이감되었다가, 12월 18일 가나자와로 이동되었다. 그곳은 상해 주둔 9사단의 본대가 있었으며, 사망한 시라카와 대장이 과거 사령관으로 근무한 곳이기도 하다. 9사단은 제암리 학살과 상해사변, 난징 대학살 등 침략전쟁의 주체였던 악명 높은 부대였다.
1932년 12월 19일, 윤 의사는 가나자와성 내 육군 형무소 공병작업장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하였다. 당시 일본은 윤 의사를 군인 신분으로 판결하고 총살형에 처함으로써, 그를 ‘테러리스트’가 아닌 교전 상대, 즉 군사행동을 수행한 존재로 간주했다. 안중근 의사가 교수형을 받은 것과는 다른 점이다.


윤 의사의 시신은 공식적으로는 화장됐다고 발표되었지만, 실제로는 가나자와 근처 공동묘지 관리소 옆 좁은 계단 아래에 암매장되었다. 광복 후 김구 선생은 박열, 평택 출신 원심창 등에게 유해 발굴을 지시했다. 당시 암장지 근처 절에 거주하던 여승 ‘야마모토 료도’의 기억 덕분에 유해는 확인되었고, 1946년 5월 15일, 이봉창, 백정기 의사와 함께 유해는 부산을 거쳐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2025년 1월, 전 KBS 김광만 PD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 93주년을 맞아 가나자와시에 추모관을 건립하려 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 추모관은 허용할 수 없다”는 일부 극우 인사의 차량 돌진 사건으로 개관이 연기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2006년 가나자와시가 허가한 윤 의사 암장지 표지석 설치조차 철거하라는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2025년 3월 25일 일본 법원은 이를 각하해 존치가 가능하게 되었다.
필자는 고덕테니스 대표 박윤구 씨의 통역 도움으로 4월 29일, 윤 의사의 순국지인 가나자와를 찾았다. 함께한 조정묵 부락포럼 고문 역시 추모관 건립에 힘을 보태기 위해 먼 길을 자발적으로 나섰다. 현지에는 철거를 주장하는 혐한 시위대도 있었지만, 반전과 반역사왜곡을 주장하는 양심적인 시민들의 침묵시위가 더욱 인상 깊었다.

우리는 윤 의사가 묻힌 암장지를 방문했다. 누군가 놓고 간 소주와 꽃이 그의 혼을 지키고 있었다.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윤 의사가 하룻밤 머물렀던 가나자와성의 구금소는 지금은 공중화장실로 변해 있었는데, 고의는 아닐지라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일본 내 반성적 역사 인식의 상징인 다무라 미츠아키 씨를 만났다. 그는 북륙대학교 전 교수이자 ‘대동아성전대비 철거회’ 사무국장으로,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모임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제암리 학살과 난징 대학살에 대해 깊은 반성과 사과의 뜻을 표했으며, 가짜 이름으로 조작된 전쟁 미화 비석의 철거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 비석에는 일본을 위해 싸웠다고 적힌 조선인들의 이름도 새겨져 있었는데, 그중엔 가미카제 특공대로 왜곡 소개된 평택 출신 탁경훈의 이름도 있었다. 그는 생전에 “나는 일본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다. 조국과 약혼녀를 위해 죽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가나자와의 대동아성전대비 앞에서, 나는 과거와 현재, 국경을 넘어 반복되는 권력자의 기만과 선동, 갈라치기 정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참혹했던 전쟁의 폐허 위에서조차 교훈을 잊는다면,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윤봉길 의사의 외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 장부가 집을 나섰으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오피니언 > 칼럼·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황인원의 詩로 세상 엿보기]달이 나를 기다린다 (0) | 2025.05.12 |
|---|---|
| [손동주칼럼]그곳에가면-안성 덕봉서원 (0) | 2025.05.12 |
| [이수연의 一寫一言]유비쿼터스 부처님 (0) | 2025.05.12 |
| [서창숙의 끄적끄적] 1981년 5월 (0) | 2025.05.12 |
| [강민경의 뇌과학연구소] 14장. 마주 본 순간, 피어난 웃음꽃 (0) | 2025.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