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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기고

[손동주칼럼]그곳에가면-안성 덕봉서원

by 주간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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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을 지나

곧게 뻗은 작을 길을 걸으면

이내 작은 외삼문이 나를 반긴다.

전학후묘라는 일정 공식속에

조상들은 터를 닦고,

배움을 실천하였다.

오늘 구석구석 선인들의 발자취를

온몸으로 느껴본다.

평온이어라

안성 덕봉서원

충절과 학문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 안성 덕봉서원

안성시 미양면의 한적한 마을길을 따라가다 보면 담백한 기와지붕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은 덕봉서원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선비의 품격을 전해준다.

덕봉서원은 1695년(숙종 21년), 지방 유림들의 뜻을 모아 조선 중기의 충신 오두인(吳斗寅)의 충절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이후 1697년, 왕으로부터 ‘덕봉(德峯)’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으며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고, 1794년(정조 18년)에는 강당인 정의당이 중수되었다.

정의당

무엇보다도 이 서원은 19세기 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살아남은 전국 47개 사액서원 중 하나다. 덕봉서원은 단지 제향의 공간을 넘어, 시대의 굴곡을 견디며 선현의 정신과 지역교육의 맥을 이어온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덕봉사우

서원 내부는 선비의 단정한 기개를 닮았다. 위패를 모신 사우는 정면 6칸 규모로 단아하면서도 무게감이 있고, 학문과 토론이 이루어지던 정의당은 중앙 마루와 양쪽 협실이 조화롭게 구성돼 있다. 이 정의당에서는 과거 유림들의 회합과 강론, 지금도 종종 열리는 문화행사들이 펼쳐진다.

홍살문

동재와 서재, 외삼문과 내삼문, 붉은 홍살문까지 이어지는 구조는 전통 서원의 격식과 품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위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바람, 사람들의 발자국은 덕봉서원을 단지 옛 건축이 아닌 ‘살아 있는 유산’으로 만든다.

1979년 사우가 중건되고, 1984년에는 동재와 서재가 복원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덕봉서원은 오늘날에도 향사를 비롯한 지역 유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고 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골짜기에 숨겨진 커다란 가르침. 덕봉서원은 지금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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