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뇌기반상담연구소장 강 민 경뇌교육학 박사
하율이를 처음 만난 날, 아이는 문턱 앞에 멈춰 서더니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합니다. 눈빛은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을 조심스레 살피고 있었지요. 또래보다 인지 발달이 느린 하율이는, 2살 터울의 지적장애를 가진 오빠와 함께 자라고 있었습니다.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 평일 양육은 주로 할머니가 맡고 있었고요.
할머니는 손자에겐 매우 엄격했지만, 하율이에겐 다소 허용적이고 감싸는 편입니다. 하율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괜찮아, 잘했어"라는 반응, 아이가 시도하기보다 먼저 앞서서 해결해주는 등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보니, 아이는 실패나 지적을 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듯했습니다.
초기 상담에서는 하율이의 스트레스 해소를 원한다고 하셨지만, 상담이 진행되면서 인지발달 촉진의 필요성이 관찰되었고 보호자와의 협의를 통해 상담 목표가 조정되었습니다. 상황을 기억하고 이해하며,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연습이 함께 진행되었죠. 상담 초반, 하율이는 자신이 잘 아는 것만 하려 했고, 단순한 모방 수준을 넘어선 문제 해결 활동이나 순서를 기억해야 하는 활동, 도형이나 색의 분류와 같은 과업 앞에서는 혼란스러워하거나 도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하나씩 알려주며 도전의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실수나 실패를 받아들이는 경험이 부족했던 만큼, 표현한 그림이나 만들기 등 활동 시 원하는 긍정적인 반응의 칭찬을 받지 못하거나, 마음처럼 되지 않으면 눈물부터 고입니다. 상대방이 웃지 않거나 친절한 톤이 아니면 혼나는 것처럼 느끼며 움츠러드는 반응이 자주 관찰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정하고 안정된 목소리로 "괜찮아. 우리가 같이 해보는 거야.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어."라고 건네줍니다.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언어와 표정, 몸짓은 아이의 두려움을 줄이고 상담자와의 신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뇌기반 미술치료에서는 이러한 상호작용이 변연계의 감정 조절과 전전두엽의 인지적 판단 기능을 동시에 자극해주는 구조로 작동합니다. 특히 안정적인 관계 속에서 감정이 조절되고 반복된 성공 경험이 축적되면, 아동의 뇌는 새로운 학습을 받아들이는 데 보다 유연해집니다.
점차 하율이는 눈물보다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모르겠어요", "어려워요"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건 큰 변화의 신호였습니다. 상담자가 반복적으로 정리해 들려준 말들을 조용히 듣고 따라 말하며, 자신도 자음과 모음을 또박또박 써보려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물론 여전히 문맥이 매끄럽지 않거나 표현에 있어 맥락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하율이는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생각을 소리 내어 표현해보고, 상담자의 말소리를 들으며 정확한 발음과 표기를 연습했습니다.
손끝 감각을 자극하는 활동은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아동의 주의 집중을 높이고, 인지적 유연성과 언어적 표현의 시도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고 있었어요. 뇌기반 미술치료에서는 감각, 운동, 언어, 정서의 통합을 통해 전뇌적 접근이 이루어지며, 특히 전두엽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데 중요한 매개로 작용합니다. 감정, 인지, 언어, 운동이 통합되는 미술활동을 통해 하율이의 뇌는 점차 연결되고 있습니다. 표현을 시도하고, 실패를 감당하며, 함께 해보는 경험 속에서 아이는 안정된 감정과 명확한 표현 사이의 다리를 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율이는 지금도 배우는 중입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울던 아이는 이제 "다시 해볼게요"라고 말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말하려 합니다. 아이의 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 말 속에는 자라나는 사고와 감정, 그리고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 시작점에 뇌기반 미술치료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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