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가? ‘태어나니 정해져 있었다’는 천수이 변호사의 말처럼 출생부터 불공평하니 삶이 평등할 리 없고 인간사는 인맥의 범위 안에서 돌고 도니 상당한 여윳돈이 아니고서야 소시민에게 법이 평등할 리 없다.
최근 헌재를 퇴직한 문형배 재판관의 ‘평균인의 삶’, ‘재판관은 피고인과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이때는 출세와 권력, 자본을 위한 도구로 법관이 된 사람들, 말장난으로 법 위에 군림하는 자들을 수없이 목격해 온 소시민들의 절망이 극에 달하던 시점이었기에 그 말들은 위로가 되었다.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는 법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달동네 판자촌 출신 변호사가 돈 잘 버는 일이 아니라 화장실 옆에 자리 잡은 한 평자리 무료법률상담소에 일하게 되면서 오히려 의뢰인들을 통해 삶을 배웠다고 말한다.
저자, 천수이는 야학과 공부방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어릴 적 경제적 결핍은 그녀에겐 일상이었다. 가난한 동네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녹슨 칼’과 같았다. 장난감을 포기해야 했고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했고, 학원비가 없어 고시강의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가난은 그녀가 작은 소망을 품을 때마다 언제나 발목을 잡았다. 그런 그녀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돈을 잘 버는 직장이 아닌 무료법률사무소를 택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결핍을 배움중독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는 방법으로 채워나갔다.
“이름을 뺏기면 다시 돌아가는 길을 잊어버려, 치히로, 귀한 이름이구나. 자기 이름을 소중히 해야 한다”
돈이 없어 무료상담을 하러 온 사람들의 사연이 저마다 절실하다. 신장투석을 하는 남편을 대신해 낮밤으로 배달.식당일을 하는 노년의 여성이 저금리로 돈을 빌려준다는 말에 통장을 만들고 보이스피싱에 도용돼 기소된 일, 엄마가 미워 새아빠에게 접근해 아이까지 가진 여성, 깡통주택 대출사기 피해자, 자녀의 학교폭력을 믿을 수 없는 엄마, 명예훼손으로 상대를 고소하며 서로의 명예를 갉아먹는 강사, 그곳엔 드라마보다 더한 삶을 사는 의뢰인들이 있었다. 천변호사는 그들의 사연에 울고 웃으며 책으로는 배우지 못할 인생 경험을 의뢰인들로부터 배우고 있었다.
변호사 천수이는 자신을 ‘잘 듣는 사람’이라고 했다. 숱한 상담의 많은 경우가 법적 해결책이 없는 상황임에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의뢰인들을 만났고 엄격한 법적 논리보다 진심에서 우러난 이해와 사랑이 그들에게 더 나은 답이 되는 순간을 체득했다.
그래서 ‘평균인의 삶’을 사는 변호사가 쓴 <사랑 없이 우리가~>는 법이 억울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기대하게 한다. <세상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듣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살만해진다는 것을 예고하는 햇살 같은 책>이라는 르포작가 은유의 말에 동감하며 나는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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