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과 미식의 고장으로 알려진 일본 고치현(옛 도사번)은 의외로 두부가 꽤 유명하다. 흥미로운 건, 그 두부 제조 기술이 조선에서 전해졌다는 점이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만 해도 도사는 시골 벽촌으로, 귀한 두부가 존재할 수 없었던 땅이다.

도사번의 영주 초소가베는 임진왜란 당시 참전해 1년 만에 귀국하면서 조선인을 다수 포로로 끌고 갔다. 조선통신사 신유한의 해유록(海遊錄)에도 초소가베에 대한 기록이 생생히 남아 있다. 전쟁에서 죽은 병사 수만큼 포로를 데려오는 것이 세금이며 수탈의 수단이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끌고 온 조선인 가운데 박호인이란 이는 경주의 작은 성의 성주 출신으로, 웅천 전투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도사번으로 끌려갔다. 박호인은 30여 명의 동료 포로와 함께 바닷가 공장에서 두부를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단단한 두부는 보관과 이동이 쉬워 산골 주민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결국 '히트 상품'이 된다. 이 전통은 오늘날 '다나카 쇼쿠'라는 브랜드로 이어지며, 상표명은 '당인(唐人)'이다. 포장지에는 조선에서 두부가 전래된 경로가 그림으로 표시돼 있어, 묘한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두부만이 아니다. 조선 여성들도 끌려왔다. 고치현의 구로시오 마을에는 ‘조선국녀 묘’가 있다. 지금도 마을 어르신들이 정성스럽게 묘소를 돌보고 있는데, 그곳엔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다. 일본에서는 이 이야기를 ‘무궁화 꽃 소녀’라는 인권교육 그림책을 통해 널리 알리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정유재란. 1597년, 병색이 완연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시 조선을 침공한다. 이번엔 호남이 주요 목표였다. 8월 16일, 남원성은 3일 만에 함락된다. 성내는 전소되었고, 살아남은 청년 남녀는 포르투갈 상인에게 팔렸다. 그중 뛰어난 도공과 기술자, 직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도사번의 무사 오타니 요시로는 남원에서 직조 기술이 뛰어난 조선 여성 세 명을 데려갔다. 그중 한 명은 탈출에 성공했고, 또 한 명은 풀어달라 애원하다 끝내 바다에 몸을 던졌다. 마지막 남은 소녀는 배 밑바닥에 감금된 채 시코쿠의 가미가와구치로 끌려가, 결국 베짜는 기술을 전수하게 된다.
그녀의 기술로 만들어진 직물은 매우 고왔고 소문이 퍼지며 고치현 일대 직물 산업이 급성장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여성들이 몰려왔고, 시코쿠 각지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오타니는 자신의 장자와 혼인을 권했으나, 소녀는 “나는 고향으로 돌아갈 사람”이라며 거절했다.
세월이 흘러 오타니의 4대손이 그녀의 망향 한을 기리며 '조선국녀 묘'라는 비석을 세운다. 1980년대, 한 지역 독지가가 고치 신문에 사연을 기고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1997년 가미가와구치 초등학교 교사가 그림책 『무궁화 꽃 소녀』를 펴내면서 일본 전역에 퍼졌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남원문화원은 2019년 10월 묘소를 참배하고 관련 도서 『조선국녀』를 발간했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한 조선 여인의 이름 없는 무덤 앞에서, 우리는 조용히 머리를 숙인다.

덧붙이자면,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카모토 료마 역시 고치현 출신이다. 그가 삿초동맹을 성사시키며 일본 근대화의 초석을 놓은 인물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혈통은 혼노지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죽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사촌 미쓰하루의 딸에게서 이어졌다는 설이 있다. 비와호 인근 사카모토성에서 농성 끝에 미쓰하루는 자결했지만, 그의 딸은 유모와 함께 도사로 피신하여 생명을 이어갔다. 료마 가문이 사용하는 문장(紋章)이 아케치가의 도라지꽃 문양과 같다는 점에서, 이 설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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