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만난 여섯 살 영배, 상담실에 들어오자마자 이리저리 둘러보며 손이 닿는대로 만져봅니다.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처음 와 본 공간임에도 두려움보다는 관심의 표현이 먼저입니다. 영배를 데리고 온 엄마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합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들어요. 통제가 안 돼요. 집에 동생도 둘이나 더 있는데, 영배 때문에 정말 힘들어요.”
사람을 좋아하고 주변에도 관심이 많은 아이는 특히 엄마에게 애정을 많이 받고 싶어했어요. 엄마와 같이 방 안에 있어도 계속 엄마를 부르며 봐달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유치원에서는 장난을 치다 혼나는 일이 잦았고, 새로운 활동 앞에서는 시작도 해보기 전에 물러섭니다.
“나만 별 못 그려요. 유치원에서…”
눈치를 보며 입을 꾹 다문 영배의 모습에는, 작은 실수에도 조심스러워지는 아이의 마음이 담겼습니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경험보다는, 실수 뒤에 따르는 꾸중이 더 익숙해진 모습입니다. 억압된 환경 속에서도 영배는 여전히 엄마의 사랑을 원합니다. 아침에 엄마에게 혼난 날은 유치원에서도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엄마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 더 많이 고민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상담 초기, 매체를 잡고 사용하는 힘 조절이 어려워 종이를 찢거나 물감을 넘치게 짰고, 화가 나면 도화지를 손으로 구기며 “몰라, 안 해! 난 못하겠어요”라고 짜증내듯 외칩니다. 이 때 아이의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봅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화나는 마음이야? 지금 느끼는 마음을 색으로 골라볼까?” 영배는 진한 검정과 빨간색을 섞어 힘껏 칠합니다. “이건 화예요. 불이 났어요. 엄마가 화났을 때도요”
뇌기반 미술치료에서는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자기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함께 작동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감각 경험과 예측 가능한 구조 안에서 반복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다루는 연습은, 뇌 회로를 다시 조직하는 과정이 됩니다. 아이가 구상한 표현에 감정을 입히고, 상황을 재구성하면 감정-언어-사고를 연결하는 전두엽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활성화됩니다.
세션을 진행할수록 영배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활동을 시작할 때마다 “오늘은 ○○을 만들 거예요!”라고 먼저 말하고, 화가 날 때는 종이를 구기기보다는 “이게 잘 안돼요. 도와주세요. ”라고 말로 표현합니다. 표현해낸 그림들을 등장인물로 의인화하여 어떤 상황인지도 표현합니다. 그림 속 인물은 “넌 너무 많이 참았지?”라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건 어쩌면 자신에게 던지는 말일지도 몰라요.
여전히 아이는 힘을 조절하지 못해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을 바라봐 주는 시선을 느끼고, 감정을 말로 꺼내는 연습을 이어갑니다. 무엇보다 엄마의 마음도 회복되어 아이와 눈을 맞추는 여유가 생기면서, 영배의 행동에 화가 올라오는 대신 예뻐 보인다며 웃으며 말합니다.
“엄마, 나 좀 봐줘요.” 이 말은 영배가 계속 보내던 신호였죠. 그 안에는 “내가 여기 있어요”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제 아이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곳이란 걸 배워가고 있습니다.
'오피니언 > 칼럼·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손동주칼럼]그곳에 가면 –춘천 김유정 문학촌 (0) | 2025.07.07 |
|---|---|
| [이수연의 一寫一言]‘국민 품으로’에서 다시 대통령 품으로? (1) | 2025.07.07 |
| [서창숙의 끄적끄적]괴짜 그녀 (2) | 2025.07.07 |
| [최인규칼럼] 일본을 걷다 (4) | 2025.07.07 |
| [양금석 칼럼 - 선거이야기 65]법으로 (1) | 2025.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