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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기고

[서창숙의 끄적끄적]먼지 나는 또 하루가 간다.

by 주간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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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숙 에바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냉장고 야채칸의 온갖 채소들 틈바구니에 뒤섞여 존재감 잃은 사과 같았다. 수분 한 방울까지 말라 퍼석하고 만지면 무른 듯 손가락이 푹 들어갈 것 같은 것이, 모양만 사과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저는….”

소개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베란다 밖 어디쯤엔가 가 있었다. 뭔가에 골몰하는 듯 심각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때, 마트에서 긴 줄 끊고 새치기해 들어온 아줌마처럼 노모가 훅 나타나셨다. 굵직한 까만색 허리 복대를 가슴 밑까지 두르고 계셨다. 다리를 약간 절며 뒤뚱거리는 모습이 얼핏 봐도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하지만 침대 난간을 붙잡고 옆걸음질로 한 발자국씩 옮기는 보폭은 스텝이라도 밟듯 무척이나 사뿐사뿐했다. 인상 깊게 해맑아 마치 등원 유치원생을 맞이하는 생기발랄한 유치원 교사를 보는 것 같았다.

음료수 뚜껑을 손수 돌려 따시더니 손에 덥석 쥐어주셨다. 사양할 틈도 없었다.

“시원하게 어여 마셔요.”

말씀은 내게 하시는데 눈은 침대에 누운 그를 바라보고 계셨다.

“오늘은 손님이 오셨네. 센터 국장님이셔. 인사해야지? 눈 깜박해 봐.”

미동 하나 없던 그가, 그리고 눈동자도 아직 베란다 밖에 둔 그가 정말 눈을 깜박깜박했다.

“어머, 금방 깜박거리는 것 보셨죠? 국장님을 엄청 반가워하네요. 싫으면 절대 눈 깜짝 안 하거든요. 하핫.”

“그렇게 반가웠어?”

노모가 생글거리며 재차 묻자 그가 다시 눈을 깜박였다. 그의 표정과 말이 생략된 채 노모의 일방적인 대화 방식이 순간적으로 딸꾹질처럼 왔다. 내게 낯선 부자연스러움이 그들에겐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의 패턴이라는 것,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하고 무수한 현장 경험이 무색하게도 매번 첫 경험으로 인식된다는 것, 이번 역시 24시간 생존 위협에 노출된, 전과 전혀 다른 장애 당사자가 내 앞에 있다는 것…. 당황스러움의 밑바닥이다.

“그런데 성욱 님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여기로요. 얼마나 맛있게 먹게요. 그치, 울 아들?”

손가락으로 살짝 짚은 것은 코에 삽입된 호스였다. 테이프로 돌돌 말아 도톰하게 고정된 호스가 콧구멍으로 길을 냈다. 우리가 365일 입을 통해 밥을 먹을 때 그는 콧구멍을 통해 주사기로 식사하고 있었다. 우리가 신맛 쓴맛 단맛 짠맛을 느끼며 쩝쩝대는 동안 그는 최소한의 영양 공급만을 위해 위를 채우고 있었다.

불 보듯 뻔한 삶이었다. 그러나 노모는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연인처럼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쉼 없이 그의 뺨과 이마를 쓰다듬었다. 몇 가닥 내려온 머리카락을 이마 위로 정성스레 쓸어올리는 노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아들’이 눈앞에 있었다.

좌측 뇌가 움푹 파였다. 제주에서 봤던 분화구와 그 자리를 빼곡히 매운 팔구월의 억새풀이 떠오른 나의 기억 소환은 본능과도 같았다. 재가 와상 장애인들의 머리카락은 당사자 의사와는 무관하게 위생 관리 목적으로 주변인들에 의해 짧거나 아예 삭발한 경우가 많다. 반해, 그는 독특하기까지 했다. 베개에 눌려 있었지만 나름의 스타일이 분명해 보였다.

“아이쿠, 이발할 때 된 걸 보니 선생님 오실 때가 다됐네. 후훗. 폼생폼사 울 아들 답답했지? 다음 주니까 며칠만 참자?”

나의 표정을 읽으신 걸까? 아님, 마음이 읽힌 걸까? 혼잣말 같은 노모의 말씀에 순간 움찔했다.

“이발해 주시는 분이 있나 봐요?”

“아, 미용 봉사자요. 성욱이가 나갈 수 없다는 걸 어떻게 아시고는 한 달 한 번은 꼭 오시네요. 벌써 10년이 넘어요. 우리 성욱이가 그 선생님 이발 스타일을 가장 좋아해요.”

“3신데요?”

“벌써요? 알았어요.”

활동지원사가 알람 맞춘 것처럼 3시라며 들어오시고 노모는 물러나듯 뒤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허리 짚고 앉은 노모 입에서 신음소리만 흐를 뿐 말이 필요 없는 세팅이었다.

활동지원사가 수동휠체어를 침대에 바짝 댄 후 고정했다. 침대 상단을 세우자 그의 몸이 고꾸라질 듯 앞으로 맥없이 쏠렸다. 곧바로 어깨로 안 듯 그의 상체 중심을 잡고 양손으로 다리를 휠체어 앞으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그 앞에서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넣어 손깍지를 꼈다. 기합과 함께 순간 이동하듯 번쩍 안아 휠체어에 앉혔다. 활동지원사 얼굴이 시뻘겋고 입에선 연신 헉헉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고, 말도 힘도 물론 없었다. 자신의 몸을 만지고 건드리고 움직이고 있었지만 옆 사람 쳐다보듯 딴청 피우며 관심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노모는 아니셨나 보다. “조심조심, 아이구 잘한다.”며 끊임없이 추임새를 넣으셨고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대여섯 발자국에 불과한 방에서 거실에 한 번 나가기를 사방이 폭격 맞은 전쟁터였다. 베개, 매트, 패드, 이불, 수건, 속옷들이 방바닥과 침대에 칠렐레팔렐레 흩어졌다. 노모도 치울 엄두를 못 내시는 것 같았다.

“매일 이 상황인 거예요?”

심란한 마음에 여쭙자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셨다. 그리고 방문을 나서는 나의 뒤통수에 노모의 한마디가 들러붙었다.

“녀석이 살아있어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죠.”

거실 한쪽으로 놓인 침대엔 아까 들어올 때 인사드렸던 그의 아버지가 이불을 목까지 덮고 누워 계셨다. 머리맡으로 베개보다 더 높게, 더 많이 쌓인 약봉지가 심란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거동이 어려우시다는 80세 고령의 아버지가 휠체어 깊숙이 푹 오그려 앉은 그와 오버랩되고 말았다. 공기마저 집안의 버거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거실 바닥으로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그를 전동 기립기에 앉히기 위한 활동지원사의 진땀이 범벅이었다. 중심을 잡을 수 없는 사지마비이고 보니 두세 배의 위험 부담은 오롯이 활동지원사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렇다고 고령의 노부부가 거들기엔 서로 더 다칠 수 있기에 진즉 기대를 버린 듯 보였다. 눈으로 지켜보며 말로만 거들 수밖에 없으셨던 게다.

“어어어엇!”

활동지원사의 비명에 놀라 혼비백산해 뛰쳐나온 사람은 놀랍게도 방안에 계시던 노모셨다. 아들의 머리부터 부여잡고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 데도 안 다쳤어. 놀라지 말어, 아들. 괜찮아.”

비호같았고 쏜살같았다. 그리고 지나치게 침착했다.

“괜찮으세요?”

노모가 진심으로 걱정되어 여쭸다.

“저요? 괜찮구 말구요. 제가 누군데요. 성욱이 엄마예요. 하하핫.”

털털하게 웃기까지 하셨다. 나로선 모성 본능의 기적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휠체어에 앉은 엉덩이 밑으로 벨트가 들어간 상태에서 균형을 잡아 끌어올려야 하는데 한쪽이 어설프게 끼이는 바람에 그만 거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커다란 눈은 깜박이지도 않았고 그저 저 앞 뭔가를 바라보기만 했다.

“죄송해요. 제 잘못이에요.”

활동지원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아이고 무슨 잘못을 하셨다고 그래요. 지원사님도 많이 놀라셨을 텐데, 괜찮아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시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말씀 산뜻하기가 비 갠 오후 같았다.

조금 전 그 날렵함은 어디로 가고 엉덩이로 기어서 방으로 들어가셨다. 쫓아 들어갔다.

“저 전동 기립기요. 꼭 쓰셔야 해요? 조금 전 활동지원사님이 장치 준비하시는데 능숙한 사람도 힘들겠더라고요. 힘도 있어야 하고.”

“알죠, 20년간 저거 하느라 저나 지 아버지나 몸 다 고장 나서 이 모양인데요. 근데 저거라도 해야 밖을 보죠. 혈액순환에 좋고 저혈압도 방지되고 어쩌고 저쩌고들 하는데 저는 그런 거 몰라요. 하지만 저렇게 서 있는 동안은 지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볼 거 아니에요. 말은 못해도 죄다 보고 알아듣는데 맨날 누워서 천장이나 쳐다본다 생각해 봐요. 끔찍해요, 끔찍해. 그건 진짜 아니지….”

설움이 북받치셨던 걸까? 갑자기 문을 잠그시더니 침대 구석에 웅크리셨다. 방바닥에 있던 수건을 입에 한가득 틀어막고 꺼이꺼이 울기 시작하셨다. 그것도 불안하셨는지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 전체를 휘감고는 방바닥에 엎드리셨다. 소리는 어떻게 막아졌다. 하지만 들썩거리는 어깨는 나를 두고두고 고통스럽게 후벼팠다. 세상 그렇게 서럽게 우는 사람을 내가 언제 본 적이 있었나! 어머니셨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회의 중에 핸드폰이 2~3분 간격으로 진동 소리를 냈다. 같은 번호였다. 불길함이 엄습하자 금세 손이 찼다. 나는 곧 터무니없는 죽음 소식에 날벼락을 맞아야 했다.

날벼락은 애도할 시간과 감정 따윈 안중에 없었다. 연거펐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었던 전신마비 장애인이 흔적 없이 홀연히 떠나버렸다. 그리고 어제는 호흡기에 매달려 사는 중증장애인이 두 번의 심정지 상태에서 가까스로 의식이 돌아왔다는 얘길 들어야 했다. 그의 입에 관을 끼우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중환자실 모습은 이 순간도 악몽이다.

그래서 내일은 누굽니까? 모레는 또 누굽니까?

저더러 어쩌라고요, 하나님!

먼지 나는 또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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