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촬영은 항상 기대와 실망 즉, 현실과의 작업입니다. 보통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요. 모스크바에 있는 고려인 4세 록가수 ‘빅토르 최 벽’이 그랬습니다.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대 성당에서 약간 떨어진 ‘아르바트Arbat’ 거리에 그를 추모하는 담장 벽이 있습니다.
아르바트는 서울 대학로와 인사동을 섞어놓은 분위기에 우리 평택의 신장 쇼핑몰과 같이 통로처럼 생겼지만, 더 넓고 길며 좌우 건물은 유럽 냄새를 물씬 풍기는 2층~7층 정도의 주상 복합 건물이 띠처럼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거리 중간 어느 골목길 옆 담장은 아주 높았는데 벽화가 아니라 온통 글씨로만 채웠습니다. 그래서 우정, 빅토르 최를 찾아온 이방인이 빅토르 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면 체면치레하듯 붙여놓은 포스터 한 장과 작은 그림 한쪽이 전부였습니다.

빅토르 최는 러시아 록 음악의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합니다. 구소련 체제 말기인 198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자유와 변화를 갈망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지요. 당시 소련 사회의 개혁 분위기와 맞물려 큰 인기를 끌었으며, 그의 노래는 이후에도 반정부 시위 등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되다가 1990년 라트비아에서 교통사고로 28세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많은 팬이 지금껏 그를 추모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벽 앞에서 감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꼈습니다. 그의 노래 한 번 들은 일 없고,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여행 안내자를 따라 허겁지겁 찾아온 곳에서 마주한 것은 아무런 감정도 빚어낼 수 없는 그라피티 벽일 뿐입니다. 그나마 그 벽의 처음 메시지는 온데간데없이 계속 덧칠해서 이게 추모의 벽인지조차 가늠하기 힘들었습니다.

예술은 표현을 넘어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며, 역사를 기록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감정과 공감의 힘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끌어내려면 만든 이와 수용하는 이 모두 메시지를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벽 앞에서는 빅토르 최가 한국계라며 찾아온 사실밖에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노래가 담아낸 것은, 극히 러시아 안에서 러시아인의 감정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냉철하게 말해서 모스크바를 찾는 한국 여행객에게 빅토르 최 벽을 찾는 코스는 그에 소비하는 시간과 열정의 기회비용을 한 번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평택에 열심히 관광 거리를 찾고 만들려는 우리도 그런 사례를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해서 한마디 거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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