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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기고

[최인규칼럼] 일본을 걷다

by 주간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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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엑스포를 다녀와서

최인규 교수 전) 호서대 겸임교수
전철에서 내리면 박람회장으로 바로 연결이 된다. 관람객이 정말 많다.

2025년 4월 13일, 오사카 엑스포가 막을 올렸다. 무려 6개월간 이어지는 대장정이다. 필자는 일본에 관심 많은 몇몇 지인들과 함께 5월, 박람회를 참관하기 위해 현지를 찾았다.

이용한 공항은 도쿠시마. 왕복 항공권 가격이 11만 원 남짓이었으니, 오랜만에 만나는 착한 가격이었다. 효고현의 아와지섬에서 출발하는 일정이라 대중교통 대신 렌터카를 이용했는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박람회장 주차는 사전 등록 차량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몇 차례 신용카드로 등록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일행은 셔틀버스를 탔고, 필자만 차를 외부에 주차하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려 했으나, 셔틀 역시 등록 차량 탑승자만 이용 가능하다는 말에 또 한 번 막혔다. 규정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일본 특유의 엄격함에 혀를 내둘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상황 판단보다는 명령과 규정에만 매달렸고, 결과는 패전이었다. 그런데 21세기도 한참 지난 지금까지 그들은 여전히 ‘1초 1밀리미터’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역사상 영웅들의 조건은 분명하다. 안전에만 집착한 자는 실패했다. 오다 노부나가의 오케하자마 전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고쿠 원정,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키가하라 전투는 모두 과감한 판단과 결단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 놓은 일본은 훗날 조슈번 육군과 사쓰마번 해군의 반목 속에 스스로 무너졌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허무는 자는 흥한다.”고 했다. 도전 없는 안주는 결국 퇴보다. 센고쿠 시대에 “변하지 않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모욕이었다. 일본의 현재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지금 우리 정치판과도 닮아 있었다.

2025 오사카 박람회의 마스코트 ‘먀쿠먀쿠’. 먀쿠는 맥박이라는 뜻이다. 오사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근거지다. 그를 상징하는 것은 표주박인데 필자가 보기에는 다산을 상징하는 표주박을 본따 박람회의 심볼을 만든게 아닐까 싶다.

1960년대 한국에도 박정희, 정주영, 이병철이라는 세 명의 ‘영웅’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했던 부모 세대가 피와 땀으로 일군 국부는, 지금 우리 세대에서 ‘잃어버린 30년’의 일본처럼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람회 직원은 미안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일본이 미국을 넘지 못하는 걸까? 외국에서는 우리를 어떻게 볼까? 혹시 우리도 이런 고집 때문에 발목 잡히는 건 아닐까?’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필자는 결국 전철역 인근 유료주차장으로 향했다.

엑스포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는 다르게 초기부터 화려하게 시작했다. 5년마다, ‘0’ 또는 ‘5’로 끝나는 해에 개최되며 전시 규모에는 제한이 없다. 참가국이 자체 예산으로 전시관을 설계하고 운영한다.

1851년 런던 엑스포가 세계 박람회의 실질적 시초로 꼽힌다. 이후 각국은 자국의 과학기술과 문화를 홍보하며 국력을 과시하는 장으로 활용했다. 1867년 파리 박람회에선 이삼평이 만든 아리타 자기가 출품되어 유럽 귀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일본의 수출 효자 품목으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 오사카 엑스포는 동아시아 최초의 등록박람회로, 6천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리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2005년엔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또 한 번 등록박람회가 열렸다.

이번 오사카 엑스포는 여수에서 열린 인정박람회보다 규모 면에서 훨씬 컸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차기 등록박람회를 유치하려고 부산 유치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하지만 개최권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돌아갔다. 필자가 보기엔 그것은 역사보다 뉴스를 만들기 위한 시도처럼 보였다. 간절함이 덜했다.

전시관 예약은 번번이 실패했고, 결국 각 전시관 앞에서 줄을 서야 했다. 한국관은 대기 50분. 발길을 돌려 한국 음식점을 찾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박람회장 내부에서 그랜드 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그랜드 링을 올라가면 박람회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목재로 만든 세계 최대의 건축물일 듯 싶다.

‘그랜드 링’을 걸었다. 못 하나 없이 나무로만 만든 구조물로, 둘레는 2km. ‘다양하지만 하나’라는 이념을 담고 있는 이 구조물은 오사카 박람회의 상징이라 할 만했다. 걷다 보니 박람회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건축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랜드 링에서 바라본 한국관의 모습.

한국관 외벽에는 가로 27m, 세로 10m의 대형 미디어 아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경복궁, 전주 한옥마을, 목포 다도해, 부산 광안대교 등 한국의 주요 명소들이 생동감 있게 펼쳐졌다. 관람객 중 일본 청소년들이 유독 많았다. 미래를 배우기 위해, 그들은 반드시 와야 했을 것이다. 일본관, 미국관, 사우디관도 보고 싶었지만 인파에 밀려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인파가 적은 소규모 국가 전시관만 둘러보고 나왔다.

그랜드 링을 배경으로 한컷. 평택에서 오신 주간평택 독자들.

그럼에도 엑스포는 ‘변화하는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더 많은 이들이, 특히 정치인들이 자비로 이곳을 찾아, 변화의 에너지를 느끼고 돌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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