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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기고

[최인규칼럼]일본을 걷다

by 주간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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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규  전) 호서대 겸임교수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인 고치현에서도 한반도인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남원성에서 끌려간 베짜는 여인, 그리고 두부를 전수한 박호인 등 고치현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조선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고치현을 찾아가기에는 아직 무리가 다소 따른다. 에이메 현의 마쓰야마에서 가기에도 멀고 도쿠시마에서 찾아가기에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일본의 속살을 보고 싶어 하는, 소도시를 찾는 한국인이 많아지기에 곧 고치 현에서도 직항 노선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2025년 5월, 오사카 박람회 참관과 함께 고치현을 둘러보았다. 고치현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로, 남원성에서 끌려간 조선소녀의 슬픈이야기 현장과 또한 ‘안도 다다오’만큼 유명한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구마 켄고’가 설계한, 산골짝의 아주 작은 도시 유쓰하라에 위치한 ‘구름위의 도서관’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구름위의 갤러리. 정말 매혹적이다.
‘구름위의 마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는 유쓰하라는 시코쿠 산지의 서쪽 끝에 위치하며 일본 3대 카르스트 중 하나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해발 1455M의 고지로 마을 면적의 91%는 숲이 차지하고 있다.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도쿄올림픽 국립스타디움을 설계하고 2025 오사카 박람회의 카타르관과 포르투칼관을 설계한 구마 켄고가 유쓰하라에 세운 6개의 건축물 때문이다. 그는 1994년 쿠모노 우에노 호텔(구름위의 호텔)을 시작으로 구름위의 작은 박물관, 구름위의 도서관 등 지역 주민에게 학습, 휴식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삼나무를 이용한 색다른 건축물을 완성했다.


구마 켄코가 설계한 구름위의 도서관.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삼나무와 그 향이 살며시 퍼지는 공간은 특별했다.
그가 도쿄올림픽 스타디움의 설계자로 선정되면서 유쓰하라의 구마 켄고 건축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이가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또한 유쓰하라는 일본의 인기남 사카모토 료마가 탈번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곳으로 료마의 발자취를 보고자 하는 국내외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구마 켄고는 고베 대지진 당시 무너진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보고 현대 건축물에 대해 상당한 비판의식을 갖게된다. 이에 따라 고치현의 유쓰하라에 지어진 목조극장을 보고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일본식 목조 건축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탄생한 공공건물이 유쓰하라의 도서관이다. 그후 그는 한국인이 무척이나 찾아가는 다자이후에 스타벅스 건물을 목조 양식으로 지어 지명도를 올리기도 했다.

세계적 유명인사가 된 그는 도쿄 경기장 역시 외관에 적극적으로 나무를 이용하여 ‘숲의 경기장’ 이미지를 완성했다. 경기장의 내구성을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자 백제인의 도움으로 완성된 ‘법륭사’의 건축 시기를 말하며 우려를 일축했다. 2026년 완공 예정인 부산 롯데타워의 타워컨셉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유쓰하라의 도서관은 가족과 함께 온 어린이들로 도서관이라기 보다 편하디 편한 사랑방 같기도 했다.
유쓰하라에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구름위의 도서관이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삼나무 향이 살며시 퍼지는 공간은 특별했다. 가족과 함께 온 어린이들이 보여 도서관이라기 보다 편한 사랑방 같기도 했다. 구마 켄고의 지명도 때문인지 외국인도 간간히 보이기도 했다.


도서관 입구에는 일본 소학교 교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니노미야 긴지로’의 동상도 보인다. 그는 여러 번의 채무를 감소시킨 입지전적인 사람이다. 자르고 갈고 연마를 부지런히 하자라는 뜻의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비석이 동상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도서관 입구에는 일본 소학교 교정에서 자주 보이는 ‘니노미야 긴지로’의 동상도 있다. 그는 시즈오카에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주경야독으로 고생하며 성공한 책벌레였다. 그의 능력을 눈여겨 본 이들에 의해 발탁되어, 재정 관리를 통해 채무를 감소시킨 입지전적인 사람이다. 자르고 갈고 연마를 부지런히 하자라는 뜻의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비석이 동상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바, 일제 강점기시기에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정에도 그의 동상이 서 있었다고 한다.

구름위의 호텔 외관도 특별했다. 그다지 돈을 더 들이지 않았는데도 신선해 보였다. 구름위의 갤러리도 필자의 눈을 잡았다. 산비탈에 꾸며진 회랑이 삼나무와 매우 어울렸다. 스러져가는 우리의 시골마을, 내 마음속에 그 해답을 찾은 듯했다.


유쓰하라에는 일본 제일의 인기남 사카모토 료마가 탈번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사카모토 료마는 기울어가는 일본을 세우기 위해 도사번을 탈번한다.
 

유쓰하라에는 일본 제일의 인기남 사카모토 료마의 '탈번(脱藩, だっぱん 에도 시대에 사무라이가 제후가 맡아 다스리는 제후국을 의미하는 '번'을 벗어나 낭인이 되는 것)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사카모토 료마는 기울어가는 일본을 세우기 위해 탈번한다. 외국을 배척하고 천황을 모시자는 ‘존황양이’사상을 받드는 젊은이들을 타박하는 도사번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도사 번의 영주인 초소가베 다이묘가 조선으로부터 가져 온 소나무. 400여 년간 이곳에서 당당하게 자랐다라는 내용이 현판에 적혀있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참전한 도사번 영주가 한국으로부터 가져온 조선소나무의 묘목이 자라 크기 35M, 둘레 3.7M의 거대한 소나무가 있는 미시마신사에서 두손 모아 공손히 기도하고 웅대한 첫걸음을 디디었다. 그것을 기리기 위해 신사 주변에는 ‘료마 탈번의 길‘이라는 푯말이 그의 장도를 알려주고 있었다.

누구나 인정하듯 메이지 유신은 근대 일본의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일본은 불같이 일어났고 또한 한반도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그 메이지 유신의 끈을 이어준 자가 바로 사카모토 료마였다. 유명한 ’삿초동맹‘을 구상하고 완성시킨 자가 바로 그였다.

일본의 소도시를 경험하는 것은 색다른 추억이다. 한적하고 조용한 거리, 변하지 않는 경치와 에도시대의 풍경은 나를 특별함으로 끌고 간다. 유쓰하라에서 나는 그 매력에 푹 빠져 구름위를 걷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잊지 못할 특별한 마을, 특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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