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요 정도만 먹고 나갑니다. ㅎㅎ’
데친 문어와 소라 한 접시가 초고추장을 끼고 올라왔다. 사진에 불과한데도 탱글탱글한 식감과 신선도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우와, 쩝! 맛나겠어요.’
‘맛점하시고 건강하세요.’
‘배고파요.’
‘으윽, 이렇게 고문해 놓고 어딜 가세요? 너무해요.’
단톡방에 댓글이 뽁뽁이 터지듯 톡톡거리며 줄줄이 달렸다. 양은 냄비가 부르르 끓는 것처럼 조용하던 단톡방이 오늘도 역시나 장수 님에 의해 삽시간에 시끌벅적했다.
‘언제든 환영합니다. 오시기만 하세요. 싱싱한 회로 푸짐하게 대접하겠습니다.’
가진 자의 여유가 만든 거드름이 MSG처럼 문자에 배었다.
20분이나 지났을까? 이번엔 벚꽃 만발한 가로수길 사진이 서너 장 줄을 이었다. 졸졸 따라다니던 강아지가 사진마다 찍혔다.
‘여긴 또 어디예요?’
댓글 하나가 쏜살같이 달리고 사진 한 장이 더 올라왔다. 강줄기가 합류하듯 전동휠체어가 양 갈래 길에서 내려오다 한가운데 멈췄다. 잘못 봤나 싶어 사진을 확대해서 다시 확인했다. 찬호 님이 확실했다. 소심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분 아닌가.
‘어머, 찬호 님? 두 분이 만나기로 약속하셨던 거예요?’
‘약속은 무슨 약속요. 집 앞 공원이에요. 장수님이 나오신다길래 저도 그냥 산책 삼아 나왔다가 우연히 만난 거예요.’
‘우와, 완전 반가웠겠어요.’
‘배다리공원이에요. 모두들 오세요.’
‘저도 가고 싶은데 배다리공원 어디로 가면 돼요?’
‘공원 안쪽으로 들어오면 넓은 공간에 벤치 있어요. 오시면 보여요.’
‘좋겠다. 부럽네요. 저는 사진으로 대리만족할게요.’
수다스러운 대화 중에 부영 님의 댓글이 달리자 팔팔 끓는 소리를 내던 냄비가 돌연 소음 제거된 것처럼 단톡방이 순간 싸해졌다. 아마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면 미안한 마음에 부영 님에게로 시선이 모아졌을 것이다.
‘아, 부영 님…. ㅠㅠ’
적막을 깬 건 나였다. 서로 보이지 않으니 보이지 않는 대로 마음 전달이 필요했다. 다행히 부영 님이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얼른 반응을 보이셨다.
‘헉. 이런 의도가 아닌데? 정말 부러워서 부럽다고 한 건데? 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거 다들 잘 아시잖아요? 사진으로라도 바깥 풍경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기분 째지는뎅.’
문 뒤에 빼꼼히 숨었던 아이가 눈 동그래져서 말하는 것 같았다.
‘글쵸? 헤헤헤.’
‘암만요, 암만요.’
‘마구마구 사진 올라갑니당. 즐감하세요.’
‘부영 님 파이팅!’
찬호 님을 시작으로 댓글에 댓글이 다시 죽순처럼 쑥쑥 올라왔다. 말똥구리만 굴러가도 까르르 숨넘어가던 사춘기 모습들이었다. 단톡방은 이들이 주고받는 문자만으로도 생수 같은 청량감이 넘쳐났다.
미리 준비해 간 듯한 떡과 과일이 벤치 위에 세팅되기도 하고, 꽤 큰 보온병과 종이컵이 나란히 놓이기도 했다. 올라온 사진들은 누가 보더라도 공원으로 벚꽃놀이 나간 상춘객이 틀림없었다.
장수 님, 찬호 님, 그리고 한 시간여 뒤에 담요로 전신을 두르고 나타난 승재 님 사진이 나란히 올라왔다. 한 사람은 호흡기, 한 사람은 헤드 작동기, 휠체어 작동조차 불가능한 한 사람은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는 개성 강한 모습으로 유난히 빛나 보였다. 이대로 휠체어 이용인 정기모임을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번뜩였다.
‘우리 휠체어 부대 정기모임 만들까 봐요? ㅎㅎ’
‘오, 좋은 생각!’
‘이름부터 정해요.’
‘에이, 아니지. 금강산도 식후경! 일단 먹고 합시다.’
‘옳소! 떡도 있고 과일도 푸짐해요.’
‘구수한 둥굴레차도 있어요.’
그들의 앞과 뒤와 옆에서 활동지원사님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분주했다. 모인 세 명의 중증장애인 누구도 손과 발을 자의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기에 곁에 계신 활동지원사들의 동선은 다른 듯 무척이나 닮았다. 이용인의 언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엇비슷한 모습으로 귀를 쫑긋 기울였다. 폰에 문자를 찍기 위한 활동지원사 각자의 손가락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떤 분은 노안 때문인지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눈을 게슴츠레 뜬 채 핸드폰 터치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한결같이 차분했고 한결같이 진중했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 아니라 금강산도 소통후경이었다. 준비해 온 떡이 딱딱하게 굳는 것보다, 둥굴레차가 차갑게 식는 것보다 그들에겐 자신의 의사 표현이 먼저였고 단톡방에 올릴 사진이 먼저였다. 번갈아 사진을 찍으며 이용인이 원하는 모습과 표현을 서로 놓치지 않으려 경쟁하는 듯도 보였다. 부영 님의 활동지원사 또한 부영 님 침대맡에서 문자 소통을 부지런히 지원하고 있을 것이다. 활동지원사들은 이미 장애 당사자로 흡수되어 있었다.
3월 오후, 이들의 수다로 땅속 생물체들이 귀 시끄러워 잠에서 깼는지도 모르겠다.
“잘 지내셨어요, 선생님? 고생 많으시죠?”
4월 일정표를 제출하러 오신 장수 님의 활동지원사가 눈에 띄게 반가웠다.
“고생은요. 제 일인데요. 후훗.”
“저번에 공원에는 잘 다녀오셨어요? 3월이라 아직 꽤 추웠을 텐데 몸살은 안 나셨어요?”
“몸살이 다 뭐예요. 얼마나 좋아라 하셨게요. 꽃샘추위에 한파주의보까지 내렸는데도 파카 입고 나가자 하셔서 혼났네요, 아주.”
“헉. 그래서 나가셨어요?”
“그럼 어떡해요. 이용인이 나가고 싶다는데. 내복 두세 벌 겹쳐 입고 모자며 귀마개,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나갔죠. 후후.”
“아이고, 애쓰셨네요. 장수 님이 선생님 오시고 진짜 많이 달라지셨어요. 1년이 다 되도록 외출 한 번을 안 하시던 분인데 요즘은 거의 매일 밖에서 활동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할 얘긴 아니지만 처음엔 정말 몸처럼 마음도 마비된 분 같았어요. 침대에 누워만 있지 어쩜 그렇게 꼼짝할 생각을 안 하시던지. 나가봤자 갈 데도 없고 반기는 사람도 없는데 쓸데없이 뭐하러 싸돌아다니냐는 거예요.”
“근데 언제 그렇게 달라지셨어요? 얼굴색도 훨씬 좋아 보이시더라고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짠해서 출근길에 맨날 길가 들꽃 사진 찍어서 보여준 것밖에 없어요. 앞마당 텃밭에 심은 고추며 가지, 오이 모종 사진도 좀 보여주고 퇴근길에 이쁜 카페 있으면 그런 사진도 좀 보여주고. 365일 누워서 천장만 쳐다보고 사는데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서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일찍 저더러 휠체어에 앉혀 줄 수 있겠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잘못 들은 줄 알고 귀를 의심했잖아요.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참.”
“진짜요?”
“네, 진짜요. 세상에 천만 원이 넘는 전동휠체어를 2년 전에 사놓고 한 번도 타지 않았다는 게 믿기세요? 타지도 않을 거면서 그 비싼 걸 왜 사놓고 묵히냐니까 언젠간 탈 것 같아서 사놨대요. 후우!”
활동지원사님이 다 식은 커피 한 모금을 소리내며 목 넘김 하시는데 긴 문장에 쉼표 하나가 찍히는 것 같았다.
“암튼 그날 휠체어에 앉혀달라는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80kg이 넘는 장수 님 체중이 새털 같이 느껴지더라고요. 하하핫.”
“산소 호흡기가 빠지면 위험하고 기기 장착도 어려워서 더 그러신 게 아닐까요?”
“어머?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가요? 그깟 기계 무서워서 이 좋은 봄날 다 놓치고 평생 손바닥만 한 방구석에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요. 사람이 목숨만 부지하자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활동지원사인 제가 버젓이 있는데 왜 넓은 세상 놔두고 방구석에만 있냐고요.”
말씀마다 명언을 쏟아내셨다. 식도에 꽉 막혔던 고구마가 동치미 국물에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근데 이유가 있었더라고요. 저도 최근에 장수 님이 말씀해줘서 알았어요.”
“이유요? 무슨 이유요?”
“장수 님이 전신마비잖아요. 체격이 큰 편이라 힘에 부치는 건 사실이에요. 그 때문에 활동지원사들이 수도 없이 그만뒀다나 봐요. 며칠 일하고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매번 줄행랑친 거죠. 그럴 때마다 사람한테 거절당하는 기분이었다네요.”
거절당하는 장수 님의 쓸쓸한 낯빛이 섬광처럼 보였다 사라졌다. 고개 끄덕이며 활동지원사님의 눈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이 테이블 위로 툭 던져지듯 떨궈졌다.
“국장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장수 님은 24시간 활동지원사 없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분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활동지원사가 그만둘까 봐서 먹고 신변처리하는 기본적인 것 말고는 아예 아무 일도 요청하지 않았대요. 결국 활동지원사 눈치 보느라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셀프로 포기하고 살아왔던 거예요. 그것도 30년씩이나. 쯧쯧! 속상해서, 원….”
아까 전 격앙됐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바닥을 보이는 커피를 마저 털어 넣으시며 울먹거리기까지 하셨다.
“그래서 장수 님이 의향만 잠깐 내비쳐도 얼마 전처럼 공원 산책이라도 나가요. 저 활동지원사 믿고 맘껏 살아보시라고 충동질도 하고요. 하핫. 요즘은 장수 님 매니저도 아니고 스케줄 관리하느라 정신없어요, 저. 정말요. 하핫!”
활동지원사의 말씀이 초에 꽂힌 심지였다. 그 이름, 장애인 활동지원사! 중증장애인 인생을 밝히는 데 중심에 서 계시지 않던가. 그들의 노동의 가치를 산출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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