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 안 하면 심심해요. 공부는 그냥 안 하고 싶어요.”
초등학교 4학년인 주민이는 입꼬리를 살짝 내리며 한마디 툭 던집니다. 평소에 하루 평균 1시간 30분 정도 게임을 합니다. 엄마는 영어시험에서 100점을 받으면 휴대폰 사용 시간을 30분 더 늘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성적이 나오지 않아 폰 사용을 더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불만입니다.
학교생활에 대해 나눌 때,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말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복도에서 교실을 지켜보는 교장 선생님, 급식실 이야기로 주제가 바뀝니다. “음… 급식은 맛있어요. 어제는 계란찜이었는데…” 처음 나눈 이야기의 흐름은 잊습니다. 그리고는 불쑥 “전 게임보다 이야기하는 게 더 좋아요”라고 했지만 학교에서는 또래와 어울리는 것도, 감정 표현도 서툴렀습니다. 학습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죠. ADHD와 경계선 지능이라는 진단에도, 엄마와 할머니는 아이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주민이의 생각과 말의 흐름은 맥락에 맞지 않는 주제로 빠르게 전개됩니다. 어릴 적부터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와 주로 시간을 보냈고, 내적 친밀함을 나누는 경험이 부족했어요.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관심을 받는 것, 주민이에게 꼭 필요한 경험입니다.
뇌기반 미술치료를 통해 정서적 지원과 언어 표현을 조율하며, 적절한 표현 방식을 하나씩 배워야 했습니다. 감정-인지-언어-행동이 통합되는 뇌의 구조적 연결로 접근하면, 감정을 조절하는 변연계가 쉽게 과활성화됩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통제하는 전전두엽이 아직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경우, 충동적인 언행과 왜곡된 판단이 반복되죠.
상담 초반, 주민이의 말에는 욕설이 자주 섞였습니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언어습관, 자신이 욕을 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어요. 자유 작업을 하면 칼, 주먹, 싸움 같은 공격적인 주제가 반복되었고, 복수와 분노의 감정이 자주 드러났고요. 자신의 입장에서만 상황을 해석하며 매사 억울함을 토로했어요.
자유로운 미술 표현과 역할극은 감정을 사고와 언어로 잇는 전두엽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는 안전한 통로입니다. 특히 아이가 만든 인형이나 캐릭터에 감정을 부여하고, 상황을 재구성해보는 과정은 전두엽과 측두엽의 연결을 강화하며 감정 표현과 사회적 사고를 함께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주민이의 복잡한 감정을 하나씩 같이 인식하고, 상대방의 입장과 감정, 그 상황에서의 선택에 대해 차분히 질문하고 함께 생각해보는 작업을 합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아이는 조금씩 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억울함과 같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횟수가 늘고, 과장된 복수 이야기 대신 “OO가 문을 세게 닫아서 기분이 나빴어요”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말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관계의 시작을 위한 징검다리가 되어갔습니다.
그렇게 상담이 진행되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타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종결을 맺었습니다. 여전히 자신만의 입장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은 남았지만, 주민이는 상담실을 떠나기 전 쑥스러워하면서도 조용히 건넨 한 마디,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작은 마음의 꽃 같았습니다. 짧았지만 깊었던 만남이 아이의 마음속에 따뜻한 장면으로 남아 있기를. 새로운 곳에서도 감정과 사고를 연결하는 경험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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